'공천 = 당선' 공식 유효 '억'소리나는 출혈 경쟁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고비용 선거' 실태와 대책
아직도 선거는 '돈'이다. 부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문제는 돈이 없으면 공천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천이 왜 돈에 좌우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고비용 선거구조'가 사라지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사실은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는 왜곡된 지역주의에 그 해답이 있다. '공천이 당선'이라는 인식이 공천과정에서 돈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돈을 내놓는 구조를 고착화시킨 것이다.
△고비용 선거 실태=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 최소 10억원은 기본이다. 부산의 경우 법정 선거비용(약 1억6천만원)의 5배 이상 드는 곳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법망의 사각지대에 아직도 '검은 돈'이 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선거에서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선거를 시작하면서 5억원을 당시 지구당에 내놓았다고 한다. 조직가동비와 각종 선거 경비 명목으로 지구당에서 요구한 금액이었다. 이 후보는 5억원 이외에 추가 경비와 자신이 직접 사용한 각종 비용을 합해 1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심한 지자체 선거
10억원은 쉽게 나가 무공천 교육감 선거도 돈 없으면 '완주' 포기
선거공영제 구호에 그쳐
왜곡된 지역주의 바꿔야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조직, 특히 한나라당 조직은 돈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책과 직능별 책임자 등 약 50명에게 한달에 활동비조로 100만~200만원씩 주면 1억원은 쉽게 나간다"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쓸 돈이 없다고 하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나가는 것이 선거판의 돈이다"고 말했다.
야당 조직도 금액은 적지만 결국 돈으로 움직이기는 마찬가지다. 한 야당 기초단체장 후보는 "법정선거비용 보다 1억원만 더 쓰겠다고 선언하자 '가봐야 먹을 게 없다'며 사무실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출퇴근길에 줄지어 서있는 선거운동원과 유세장에 동원된 사람들도 대부분 '일당'을 줘야 움직인다. 한번 행사를 할때마다 최소 5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플래카드 비용과 유세차량 임대료 등도 '부르는 게 값'이라 실제 법이 인정하는 비용보다 훨씬 많이 든다.
교육감 후보도 선거자금이 관건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등 캠프 가동 경비는 물론이고 인쇄비를 포함한 출판기념회 비용 등 돈이 쓰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여기에 유력인사를 만나 '인사'까지 한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한 교육감 후보는 "돈은 계속 나가는데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는 선거 후 '빚더미'에 앉았다. 그는 "당선만 되면 거액을 지원하겠다"는 '스폰서'의 말을 믿고 대출로 선거자금을 충당했지만 낙선하자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이 후보는 '빚'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헌금 실태=고비용 선거구조는 결국 '공천 헌금'을 잉태한다. 출마예정자를 상대로 "공천을 줄테니 거액의 선거비용을 미리 내놓으라"는 요구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선거비용 명목의 공천 헌금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공천경쟁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한나라당 부산시당측은 "공천 헌금은 있을 수 없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0억원이 없어 출마를 접은 한 기초단체장 후보의 사례로 볼때 아직도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옛 지구당)에서 공천을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구태가 사라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일부 지역의 경우 공천을 받으려면 기초단체장은 기본이 5억원, 시의원은 1~3억원의 돈을 선거자금조로 내놓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구청장이든 시의원이든 돈이 없으면 입도 떼지 못한다"며 "보좌관 출신 몇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천의 핵심 기준은 돈이다"고 잘라 말했다. 한 시의원은 "모 국회의원이 앞으로 누구에게 시의원 공천을 주는지 두고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며 "수백억원대 재산가의 인사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왜 문제인가=공천과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인 비용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당선된 후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민선4기 전국 230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비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단체장은 40.9%인 94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다 자살한 오근섭 전 양산시장도 결국 '선거 빚'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 전 시장은 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선거자금으로 무려 60억원을 빌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선거과정에서의 '출혈'이 당선 후 검은 돈을 받는 비리사슬로 이어져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만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선거공영제의 근본 취지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국가가 선거비용 보전이라는 형태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돈과 상관없이 양질의 지도자를 뽑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천과정에서 법정선거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돈을 헌금조로 요구해 양질의 후보가 출마를 할 수 없다면 선거공영제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대책은 없나=우선 불법 선거비용과 공천 헌금 등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우선돼야 한다. 선관위와 사정당국이 불법 자금과 은밀하게 거래되는 검은 돈을 파헤칠 수 있는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의원의 낙점이 공천으로 이어지는 정당 공천 관행과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연결되는 고질적인 지역주의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면 국회의원들은 돈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며 "하향식 공천과 뿌리깊은 지역주의를 타파되지 않고서는 공천 헌금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단체장 후보가 모을 수 있는 후원금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거비용제한액의 50%인 8천만원 밖에 모을 수 없는 현행 제도로는 단체장의 비리 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손영신 기자 ze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