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그때 그 늬우스] 대통령동상(大統領銅像)을 파괴(破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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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上午 十時頃 종로(鐘路) 방면(方面)에서 「데모」하던 일부(一部) 학생(學生)들이 탑동공원(公園) 안으로 몰려들어가 이대통령(李大統領) 동상(銅像)을 넘어뜨린 후(後) 쇠「로프」로 목을 매어 길가로 끌고 나와 종로화신(鐘路和信) 앞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 - 1960년 4월 26일>

독재자들은 동상 세우기를 좋아한다. 우상화를 통한 절대권력을 실현하려는 의도이리라. 광복 후 12년간 장기독재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그의 동상과 흉상이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특히 1956년 8월 15일 서울 남산에 건립된 동상은 높이 24m에 이르는 당시 동양 최대 크기였다. 비용도 당시로서는 엄청난 3억원이나 들었다. 이에 앞서 그해 3월 31일 서울 탑골공원에 세워진 것이 위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규모는 남산 것보다 작지만 서울의 중심가에 설치된 상징성이 있었다.

하지만 4·19혁명이 일어나고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자 바로 탑골공원의 동상이 끌어내려져 쇠줄에 묶인 채 몇시간 동안 끌려다녔다. 규모가 컸던 남산의 동상은 넉달 뒤인 8월 19일에 철거되었다. 독재자의 동상은 권력의 성쇄와 같이 한다. 권력이 죽으면 동상도 무너진다. 독재자의 종말을 상징하듯이. 몇년 전 두 동상의 잔해물 일부가 서울 명륜동의 한 주택 마당에 방치돼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4월 28일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二十七일 하오 二시경 시내 서대신(西大新)동 경로회 홍성문(洪聖文)씨 외 七명의 노인들이 본사를 찾아와 우남공원이란 이름을 앞으로 충무(忠武)공원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자는 건의문을 내놓았다. ···권력에 아부하는 부패인들에 의하여 우남공원이라 불리어진 것이니 ··· 마땅히 충무공원으로 개칭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남공원은 부산 용두산공원의 이름을 1957년에 바꾼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호 '우남(雩南)'을 딴 기념물도 많았다. 우남정·우남회관·우남도서관 등. 이 우남이란 명칭도 권력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용두산공원은 1966년에 제 이름을 되찾는다. 정광용 기자 ky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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