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토렴과 샤부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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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만화 <식객> 15편, '돼지국밥 마산식당'편을 보면 "자! 무우라 내 새끼야" 하고 국밥 한 그릇을 식탁에 턱 놓는 장면이 나온다. 한데 이 장면 바로 앞에, 그 국밥을 다루는 과정이 이렇게 소개돼 있다.

'고기하고 밥을 그릇에 담아가꼬 뜨건 국물을 옇다 붓다 옇다 붓다.'

이 과정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밥과 고기를 뚝배기에 담은 다음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밥과 고기를 데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걸 '토렴'이라고 한다.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이 사전풀이다. 원래는 '퇴염(退染)'이었는데 요즘은 '토렴'으로 더 많이 쓴다.

한데, 요즘 몇몇 음식점은 토렴을 이상하게 써서 헷갈리게 한다. 토렴을 메뉴로 내세우는 집에 실제로 가 보면 얇게 썬 쇠고기와 버섯 따위를 뜨거운 육수에 담가 데쳐 먹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토렴이 아니라 '샤부샤부'라고 해야 정확하다. 국립국어원은 샤부샤부를 '냄비 요리의 하나. 얇게 썬 고기(주로 쇠고기)를 끓는 물에 데쳐, 양념장에 찍어 먹는 요리'라고 설명한다.

토렴은 음식이 든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것이고, 샤부샤부는 뜨거운 육수가 든 그릇에 재료를 넣고 살랑살랑 흔들어 익히는 것이다. 그러니, 토렴과 샤부샤부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 방식이다. 게다가 토렴은 주로 돼지국밥·쇠고기국밥 같은 국밥류나 국수를 데우지만, 샤부샤부는 얇게 썬 쇠고기·돼지고기나 복어 따위 생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채소도 데친다. 또 토렴은 내용물뿐만 아니라 그릇을 데우는 효과도 있으니 이래저래 샤부샤부와는 다르다.

음식점들이 '샤부샤부'가 일본말이라 해서 '토렴'으로 쓰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본말이 싫다고 해서 잘못된 말을 쓰는 건 더 큰 문제를 부를 수 있다.

흔히 '샤브샤브'로도 쓰지만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가 옳다. 일본어 표기에서 '브'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샤부샤부와 비슷한 것으로는 중국 요리 '훠궈(火鍋)'와 태국 요리 '수키'가 있는데, 둘 다 외래어 표기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또 '스키야키'는 '왜전골, 일본 전골'로 순화한 데서 알 수 있듯 전골 요리로 분류되므로 샤부샤부나 토렴과는 다르다. 이렇게 비슷한 요리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전문가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진원 기자 jinw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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