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부산 출신 충무로 명품 조연 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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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도 마냥 좋은 배우의 길 우리에게 '작은 역할'이란 없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사고뭉치' 막내로 컸던 고창석은 부인과 함께 대학 연극과에 들어간 뒤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박희만 기자 phman@

명품 배우' 고창석(41)은 요즘 영화마을에서 단연 화제다.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인 여름 시즌 100억 원대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퀵'과 '고지전' 등 2편에 동시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 때문에 '고창석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라는 소문이 돌 정도다. 서른 일곱 늦깎이 나이로 데뷔했음에도 주가는 연일 상한가.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그를 만나 '인간 고창석'과'배우 고창석'에 대해 들어봤다.






★인간 고창석

많은 이들이 부산 사람을 만났을 때 흔히 두 가지 착각을 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가 있고 누구나 회를 잘 먹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산도 다른 대도시처럼 앞뒤가 콱콱 막힌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 생선회를 못 먹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창석에겐 , 적어도 이 두 가지는 사실이다. 문을 열면 바로 바다인 광안리에서 태어났고 회도 무척 잘 먹는다. 친구 많고 의리 넘치는 그야말로 '경상도 사나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연세대를 졸업한 인텔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2남1녀 중 막내. 친할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시의원을 지냈으니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형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서울법대를 나온 '범생이' 형은 현재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부산대를 졸업한 '깍쟁이' 누나는 미국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활약 중이다.

변호사 형·교수 누나의 사고뭉치 막내
'딴따라'고집 부모님 애간장 다 태워
30대에 다닌 대학서 본격 연기 공부
노동현장서 알바까지 안 해본 일 없어
사업 실패로 인생 벼랑 끝 서기도


고창석은 형이나 누나와 반대로 나갔다. 특유의 붙임성과 쾌활함으로 고교 때 반장을 맡았지만 공부는 대충했다. 대신 "돈을 벌자"고 각오를 다졌다. '기업가의 필독서'로 알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대망'같은 책을 읽으며 처세술도 익혔다.

1989년 부산외대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학업에는 별 뜻이 없었다. 탈춤 동아리에 들어갔고 마당극도 무대에 올렸다. 1993년엔 총학생회 부학생회장을 맡아 '운동권'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영부영 보내는 세월이 싫었고 갑작스레 어려워진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대학에서 나온 뒤 그는 끼를 살려 부산의 민중가요 노래극단 '희망새'에 들어갔다. 극단 생활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음료수 공장, 철공소, 편의점 '알바'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김 양식장이라고 기억한다. "양식장 배 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몇 번을 도망쳐 나왔어요."

그렇게 낮에 일하고 밤에 공연과 연습을 하는 '주경야독'으로 4년여의 시간을 훌쩍 보냈다. 이 와중에 극단에서 부인인 경성대 출신 이정은 씨를 만났다. "처음 볼 때 무척 까칠했어요. 오죽했으면 선배한테 '저 애가 있으면 제가 나가겠다'고 할 정도로 미워했죠. 그런데 싸우다 정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결국 1999년 결혼을 했죠."

결혼에 즈음한 시기, 고창석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아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탈춤동아리, 노래패, 마당극단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고교 졸업 10년 만에 다시 대학문을 두드렸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도전, 당당히 입학한 것. 혼자가 아니라 부인과 함께 시험을 봤는데 동반합격을 했다. 학교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화제가 됐다.

당시 서울 남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서울예대에서의 캠퍼스 생활은 이들 부부에게 재미있고 한편으론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선배는 열 살가량 적은 까마득한 '인생 후배'. 하지만 영화과 특유의 엄격한 '학풍'과 '군기' 때문에 꼬박꼬박 '선배님~'하고 불렀다. 아예 거리공연하는 셈치고 처음부터 캠퍼스가 떠나도록 큰소리로 외쳐댔다. 귀찮았는지 나중엔 "이젠 창피하니 제발 선배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재미난 일도 적지 않았다. 부부가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한 데다 특유의 붙임성과 친화력 탓에 학교 주변에 잡은 이들의 원룸 신혼부부방은 종종 술취한 학생들의 '모텔'이나 '사랑방'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단다. 이뿐만 아니다. 졸업 후 고창석은 영화 현장에서 나이가 어려 보이는 서울예대 동문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니는 몇 학번?"하고 물으면 대개는 고참. 그러면 즉시 예의를 갖추고 "아이고~ 선배님"이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예컨대 그가 출연한 영화 '맨발의 꿈'과 '혈투'의 주연배우 박희순은 나이는 같지만 학교 10년 선배다. "대학을 늦게 다녔더니 지나가는 애도 다 선배더라고요.ㅎㅎ"

부산을 떠나 가정을 일군 서울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감 구하기 역시 쉽지 않았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번에도 알바에 나섰다. '몸을 쓰는' 노동을 해야 하는 20대 때와는 달리 영화와 연극를 배운 덕택에 이번엔 '머리 쓰는' 노동이 많았다. 공연 이벤트, 연기지도, 신제품 발표회, 모터쇼 연출 등 제법 '전공'을 살리는 일감이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친구와 함께 아예 공연제작사를 차렸다. "가족뮤지컬을 몇 개 했는데 꽤 잘됐죠. 그런데 욕심을 좀 내다가 쫄딱 망했어요. 이러다가 다 죽겠다 싶어 회사를 친구에게 맡기고 대표를 그만뒀지요." 시간을 쪼개 야금야금 영화 쪽에 기웃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사업 확장 과정에서 생긴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돈 달라는 전화받기가 무서워 어느 날 집을 나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날 저녁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영화상 시상식에 참석, 카메라 플래시가 팡팡 터지는 가운데 레드카펫을 걷고 뷔페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날 하루 지옥과 천당을 경험했죠."

위에서부터 영화 '맨발의 꿈' '혈투' '영화는 영화다' '바르게 살자' '퀵' '헬로우 고스트'에 출연한 고창석.


★배우 고창석

이야기는 자연스레 '배우 고창석' 쪽으로 넘어갔다. 사업에서 쓴맛을 본 그는 2004년께 이력서를 쓰고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들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제법 '거장' 혹은 '중견' 감독의 신작에 연이어 합격통보를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등에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얼굴을 내밀게 됐다. "오디션을 보면 볼수록 다 되는 거예요. 이때 '아, 나는 배우로 될 놈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ㅎㅎ"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그가 마침내 단역을 벗어나 '조연'급에 캐스팅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2007년 개봉된 라희찬 감독의 '바르게 살자'의 우종대 역으로 이름을 올린 것. 이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 늦어도 한참 늦은 늦깎이 데뷔인 셈이다. "이 영화는 제가 엑스트라로 고만고만한 연기를 하다가 본격 연기에 입문한 계기가 된 작품이라 기억이 많이 남네요."

김기덕 감독의 제자인 장훈 감독의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2008년)에서 그는 소지섭, 강지환과 함께 '봉 감독'역을 꿰차면서 '고창석'이란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됐다. 비록 작은 영화지만 '부산', '맨발의 꿈'에선 주연도 소화했다. '감초연기가 맛깔스럽고 성격 좋은 놈'이란 소문이 돌면서 그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혈투' '헬로우 고스트' '의형제' 같은 대작영화들이 그를 유혹했다.

'괴물' 등 단역 배우
영화 '바르게 살자' 로
서른일곱 늦깎이 조연 데뷔
감초연기 입소문
충무로 잇단 캐스팅

개봉 앞둔 '고지전''퀵'
맛깔나는 연기 톡톡
KBS 1박2일 출연
폭풍 예능감 인기몰이
마흔하나 잔치는 시작됐다


이뿐만 아니다. 올 여름 시즌 최대 화제작인 조범구 감독의 '퀵'과 장훈 감독의 '고지전'에 겹치기 출연할 정도로 '귀한 몸'이 됐다. "솔직히 둘 중 어느 영화가 좋으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게 어디 있겠어요."

이즈음 그는 '퀵'과 '고지전' 동반 출연에 얽힌 사연 하나를 살짝 귀띔해 준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날 '퀵'의 제작사인 JK필름 윤제균 감독이 장 감독에게 전화했어요. '촬영 스케줄을 맞춰줄 터니 고창석을 좀 빌려달라'고 말입니다. 영화가 공교롭게도 오는 20일께 같이 선보이지만 그때는 개봉일이 달라 장 감독도 흔쾌히 응했죠. 제가 좀 인기가 있죠."

'퀵'에서 고창석은 폭탄테러 사건을 수사하는 서 형사로 출연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고, '고지전'에선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북한 출신 국군으로 분해 구수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진한 감동을 전달한다.

그만큼 배우 고창석은 '천의 얼굴'을 가진 '명품배우'다. 남들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탈춤, 노래패, 마당극으로 바닥생활을 해봤고 30대에 다닌 대학에서는 기초를 제대로 다졌다.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인생막장'을 체험했고, 사업을 통해 성공의 달콤함과 실패의 쓰라림도 맛봤기에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관객과 동화된다.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은 '미친 존재감'. 그의 연기관이 궁금했다. "연극할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배역이 크건 작건 제가 재미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요. 물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제 이름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올라가면 물론 좋겠지만, 열대여섯 번째로 올라가도 상관없어요."

그만큼 '배우'란 직업이 좋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큰 배우가 되겠다는 욕심이 왜 없겠어요. 근데 내가 부리는 욕심은 다른 차원에 있죠. 그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송강호, 최민식 선배 같은 큰 배우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제 인생이 비참하거나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전 스스로를 어느 시골 극단의 누구보다 우월한 배우라고 생각해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유명 배우들보다 제가 열등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농담도 곁들였지만 작품 선정 기준도 분명했다. "전 사람을 먼저 봅니다. 물론 시나리오도 좋아야 하지만 제작자, 감독, 동료배우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죠. 물론 일감이 없을 땐 아무거나 해요."

유난히 돋보이는 건 덥수룩한 수염이다. 평소엔 면도를 하지 않는다. "기르긴 어려워도 자르긴 쉽고 수염을 통해 연기의 진폭을 크게 갖고 갈 수 있더라고요." 실제로 '맨발의 꿈'에선 깔끔하게 밀었고, 사극 '혈투'에선 자신의 '자연산' 수염을 그대로 썼다.

이렇듯 영화를 끔찍히 사랑하는 그가 얼마 전 '예능'으로 살짝 외도(?)를 했다. 지난달 12일과 19일 두 차례 방영된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 '1박2일-명품 조연 특집'에 성동일, 성지루, 안길강, 김정태, 조성하와 함께 출연,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그의 출연 소감이 재미있다. "단편을 포함해 영화 20편을 출연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던데 '예능' 한 편 나갔다오니까 전부 알아 보더라고요."

당시 그는 자신을 쏙 빼닮은 붕어빵 딸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예원이가 고창석과 '판박이' 같자 이를 본 이승기는 "수염 빼고 다 닮았다"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고창석도 요즘 여느 아빠처럼 지극히 딸을 사랑하는 '딸 바보'다. "제 아이가 너무 예뻐요. 엄마 아빠가 연기를 하는 까닭에 아직 초등학생임에도 꿈은 뮤지컬 배우라고 말해요. 어떻게 하든 들어줘야죠."

그는 요즘 부산에서 아이돌 가수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Mr.아이돌'을 찍느라 여전히 '바쁜 몸'이다. 틈틈이 해운대 본가에 들러 못다한 효도를 한다. 그런데 집을 나설 때, 춥고 배고픈 '배우의 길'을 가는 '막내'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모친은 늘 그렇듯이 그의 주머니에 용돈 몇 만 원을 집어넣어준다. 이를 의식했는지 '명품 배우'로 우뚝선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해부터 배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더라고요. 이젠 효도 좀 해야죠."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생년월일

1970년 10월 13일
부산서 2남 1녀 중 막내로 출생


가족

아버지 고영동, 어머니 김영자, 형 고창현, 누나 고미앵,
부인 이정은, 딸 예은(초등 4년)


학력

수영초-광안중-해운대고-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연작

'퀵' '고지전' '헬로우 고스트' '혈투' '의형제' ' 맨발의 꿈' '드림' '이태원 살인사건' '부산' '영화는 영화다' '바르게 살자' '괴물' '친절한 금자씨' '미스 고 프로젝트' 'Mr.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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