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틈'] 공간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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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술대전이 열리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

매년 이맘때면,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대전 출품 입상작으로 전시실이 가득 채워진다. 부산시와 부산미술협회에서 공동 주최하는 부산미술대전이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19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한창 전시 중이다. 부산미술대전은 역량 있는 신인 작가 발굴과 미술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전국 공모로 열리는 연례행사. 매년 그래 왔듯이 올해도 한국화, 서양화, 수채화, 서예 등 전체 출품작 1천377점 가운데, 입상작 711점을 전시하고 있다.

올해로 38회째인 부산미술대전은 그동안 부산시민회관과 부산문화회관 등에서 열리다 1999년 제25회 때부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해 왔으니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열리는 게 당연시돼 버렸다.

부산미협 측은 한자리에서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산미술대전 때문에 정작 부산시립미술관은 미술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먼저 전시 공간의 문제다. 굳이 이곳이어야만 할까? 부산미협 측은 "전시할 공간이 마땅찮아서 미술관 전시실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김양묵 부산미협 이사장은 "미술관의 입장도 공감한다. 하지만 부산시민회관 전시 땐 상대적으로 작품 수가 적었다. 제2벡스코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별도의 추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부산미술대전은 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부산미술대전 전시 기간과 전시 준비를 위한 공백 기간을 합치면 이래저래 40일가량 된다. 미술관 기획 전시 일수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지난달 중순, 시립미술관에 한 외국인 관람객이 찾아왔다. 당시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대전을 준비하려고 기증전시만 빼고 기존 전시를 철수한 상태였다. 외국인 관람객은 다른 전시를 보고 싶어 했지만, 기증전시 외엔 볼 수 없었다. 평소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는 서너 개 전시가 2, 3층 전시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전시가 끝나도 미술관 내 전시 공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부산미술대전은 2층 기증상설실만 뺀 나머지 2, 3층을 모두 사용해서 이런 공백 상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부산미술대전 전시 방식의 문제도 곧잘 입길에 오른다. 이곳에서 전시하더라도, 700점이 넘는 입상작을 시립미술관 2, 3층을 죄다 사용해 전시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로 부산미술대전의 역량을 보여주고 싶다면, '선택과 집중'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시 내용도 문제다. 미술비평가 강선학은 최근 펴낸 미술평론집에서 부산미술대전을 두고 "실험적이지도, 완결성도 없는, 상투적이고 시대에 뒤진 소재와 기법의 반복만 보이는 공모전"이라며 비판했다. 공모전이란 성격 때문에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작품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고, 동시대 미술의 이슈를 끌어내는 기획이나 청소년에게 신선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전시를 기대하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시립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부산미협 공모전을 미술관 대표 전시로 오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입장료를 받다 보니, "다른 전시는 무료인데 유독 이 전시만 유료인가"라는 관람객의 항변도 고스란히 부산시립미술관이 떠맡곤 한다. 부산미술대전은 입장료가 어른 4천 원, 학생 2천500원이지만, 경기도나 대전, 대구, 광주에서는 미술대전 입장료가 무료다. 울산은 일반 2천 원, 학생 1천 원을 받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미협은 지금부터라도 전시 장소, 전시 내용 등 부산미술대전에 관한 더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의 대표 문화 공간이다. 전시 기간이 한 달 남짓하다지만 이를 사용하려면 이에 걸맞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공간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글·사진=정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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