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폐허 속에서 건진 아프가니스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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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칼보다 강하다'… 탈레반 정권 탄압 이겨낸 예술혼

아프가니스탄 영화가 어렵게 부산을 찾았다. 아프가니스탄 영화 역사상 큰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다. 탈레반 정권의 철저한 영상물 파괴 작업에서도 살아남았다. 원리주의자인 탈레반 정권은 이미지를 사악한 것으로 보고 부정했다. 텔레비전과 극장을 없애고 필름을 불태웠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작품을 감췄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탈레반 정권이 물러난 2001년 이후 다시 빛을 본 영화들이다. BIFF에서 상영할 작품은 모두 6편. 아프가니스탄만의 독특한 형식과 영상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다.

영화 '라비아 발키'는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압둘라 샤단과 모함마드 나지르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왕의 총애를 받는 공주와 노예 출신 호위 무사의 사랑을 그렸다. 왕이 죽자 공주가 왕위에 오를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반대 세력은 호위 무사와의 사랑을 빌미로 공주를 곤경에 빠뜨린다. 마지막 장면은 비극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영정 BIFF 프로그래머는 "아름다운 낭만과 사랑, 권력 암투로 희생되는 로맨스가 뼈대를 이루는 대서사극"이라고 말했다.

비극적 사랑 그린 '라비아 발키'
사회문제 파헤친 '광대 아크타르'
옴니버스 영화 '옛날 옛적…'

포장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성
아프간 특유 영상 속에서 '폭발'


라티프 아흐마디 감독이 연출한 작품 '사랑의 서사시'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컬러 영화다. 1986년 작품이니 컬러 영화 제작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적대적인 두 부족장의 아들과 딸이 펼치는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영상이 강렬하고 줄거리가 시종일관 박진감 넘친다. 상영시간이 160분으로 상당히 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낭만적인 사랑이 펼쳐지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사실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폭력의 역사가 영화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포장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영상 속에서 폭발한다.

'광대 아크타르'는 사회문제를 파헤친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이 영화도 라티프 아흐마디 감독이 만들었다. 약물 중독, 인신매매 등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작품 내용은 심각한데, 음악은 달짝지근한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가 계속 쏟아진다. 줄거리와 음악이 엇박자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아프가니스탄이 인도 문화권이어서 발리우드 영향을 받아 음악 사용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영화 '이방인'에서도 팝송이 흘러넘친다. 주로 비틀스 음악이다. 세디그 바르막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이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명맥이 끊어질 뻔한 아프가니스탄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고마운데, 심지어 잘 만들기까지 하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이방인'은 아프가니스탄의 독특한 문화를 잘 녹여냈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다. '결혼한 여자는 다른 남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는 아프가니스탄 고유문화를 소재로 펼쳐지는 내용을 담았다. 소작농 부부가 사는 집에 지주가 낯선 외국인을 데리고 와 대접을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상영시간은 45분에 불과하지만, 일반 관객에게 가장 친숙한 줄거리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옛날 옛적 카불에서'는 옴니버스 영화다. 카렉 아릴, 모함마드 알리 로우낙, 술탄 하미드 하쉠 감독이 연출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어느 날 밤에 일어나는 이야기 셋을 영상에 담았다. 전통을 고수하던 아프가니스탄 사회에 자본주의와 서양 문화가 밀려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뤘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급격한 사회변화로 몰락했거나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젊은이 대부분은 전통방식으로는 경제생활이 불가능한 처지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도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은 범죄와 쉽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감독은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사회 구조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젊은이들의 상황을 세밀하게 담았다"고 말했다. 구성이 탄탄한 것도 장점이다.

파이즈 모함마드 카이르자다 감독의 '새처럼 자유롭게'는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홍보성 짙은 영화다. 시골 소녀가 도시로 나가 겪는 일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성장을 보여준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고민을 했는데 결국 초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고 내용도 흥미로워서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홍보영화로만 취급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1961년 제작된 이 작품은 자국 배우를 캐스팅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영화다. 내용도 아프가니스탄을 홍보하는 것 같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현실을 드러내는 아프가니스탄 영화의 특징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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