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바가지 없애고 더 깔끔하게… 스타들의 사랑방 '바다마을'
입력 : 2012-09-20 08:00:36 수정 : 2012-09-20 14:39:50
'해운대 포차촌' 왜 인기 끄나
'해운대 포차촌'은 부산시민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때면 스타 배우들도 즐겨 찾는 부산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바가지 요금과 비위생적인 시설로 외면받았으나, 10여 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정비한 덕분이다.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지난해 10월의 어느 밤. 부산 해운대 그린나래호텔 맞은편, 해운대해수욕장 공영주차장 옆에 있는 포장마차 집단, 이른바 '해운대 포차촌'에 소동이 일었다. 배우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 영화 '마이웨이'에 함께 출연했던 두 스타 배우가 영화제를 계기로 부산을 찾아 이곳에 들른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경호원들은 그들을 막아섰다. 두 사람은 여기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두 사람 이전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 많은 스타들이 이곳에서 해운대의 밤을 즐겼다. 술 좋아했던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이곳을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자 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동행들에게 술잔을 돌린, 이른바 '스트리트 파티(street party)' 일화는 유명하다. 도대체 '해운대 포차촌'에 무엇이 있어 그런 스타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한때 270여 개 난립 40여 개로 정비
바닷가재·생선회·해물라면 등 다양
단골이 원할 땐 메뉴에 없는 밥까지
스쳐가는 바다 내음·파도 소리 낭만#'바가지의 대명사'에서 해운대의 명소로 거듭나1970년대? 80년대? 언제부턴가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에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살기 힘든 시절.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해수욕장 주변에 큰돈과 대단한 기술 없어도 차릴 수 있는 포장마차가 들어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숫자는 급속히 늘었다. 많을 때는 무려 270여 개에 달했다. 무분별한 난립. 주민, 관광객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민원을 접한 관할 구청은 단속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상인의 회고.
"그때, 단속이 얼마나 무서웠는데. 오후 2시에 손수레 끌고 나오면 대여섯 번은 도망다녀야 했어. 저녁 10시나 지나야 좀 느긋하게 장사할 수 있었지. 치워라, 못 치운다, 구청 공무원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
도망다니며 장사하다 보니 깨끗할 수가 있나. 외지 손님이 많다 보니 술값, 안줏값 바가지 씌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해운대 포장마차, 그러면 고개를 내젓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 "거기서 바가지 안 당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지난 2001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관광특구 해운대에 깨끗하게 관리되는 포장마차촌을 만들어 보자, 그런 요구가 높았다. 해운대구청이 대대적으로 정비사업을 벌였다. 위치도 현재의 장소로 한정하고 정화조, 상수도 등의 시설을 갖췄다. 난립하던 포장마차 수도 확 줄였다. 장애인, 저소득층, 독거 노인 등 가능하면 형편 어려운 사람들 위주로 심사를 벌여 40여 개로 줄였다. 포장마차의 규격과 모양새도 일정하게 했다.
천차만별이던 가격도 통일시켰다. 생선회야 시가로 판다 쳐도 낙지나 소라, 돌멍게, 해삼, 개불, 새우 등은 한 접시에 2만 원, 전복은 3만 원으로 제한했다. 덕분에 포장마차촌의 면모도 일신하게 됐다. 깔끔해진 것이다. '바다마을'이라는 해운대 느낌 물씬한 이름도 얻었다.
#인근 해녀들이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 그리고 소주하얀 접시에 담겨 나온 성게알에서 꽃향기가 난다. 싱싱한 것이다. 나무젓가락으로 헤집어 먹으려니 주인 아지매가 "하이고, 맛 다 버려 놓네"라며 말린다. 작은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서 먹으란다. 그래야 성게 향이 온전히 나고 맛깔나게 씹힌단다. 옆 자리 앉은 다른 손님은 어찌된 셈인지 성게알로 밥을 비벼 먹고 있다. 차림표에 없는데, 어찌 됐나 하니, 주인한테 따로 부탁한 것이란다. 그런 특별 메뉴도 자주 부탁한단다. 모르는 사람은 못먹는 셈이다.
수조에는 성게 외에도 소라, 돌멍게, 낙지, 개불, 해삼, 전복, 새우, 종류 모를 생선들이 펄펄하다. 인근에 있는 미포, 청사포, 동백섬, 멀리는 울주 서생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해녀들이 직접 물질해 건져올린 것들이다. 싱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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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복, 소라, 개불, 새우, 담치, 성게…. 해운대 인근의 해녀들이 물질해 잡은 것들이다. |
따로따로 시키기가 뭣하다면 큰 접시 모둠으로 시키면 된다. 가격은 적당히 흥정이 가능하다. 요즘은 대하가 제철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나온다. 12월 들어서면 대하는 들어가고 털게가 나온다. 5월까지 나오는데, 남해에서 나는 것을 주로 쓴다.
주인의 솜씨나 취향, 고집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40여 개 포장마차에서 파는 것은 그런 정도로 서로 엇비슷하다. 어린 배춧잎을 찍어 먹으라고 붉은색 젓갈을 내놓는 집이 있다. 갈치젓인데, 구워 먹지도 지져 먹지도 못하는, 한 마디로 상품가치가 없는 갈치로 그런 젓갈을 만든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짭조름한 게 아삭거리는 배추의 심심함에 잘 어울린다.
요즘 '해운대 포차촌'이 전략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바닷가재다. 수입산으로, 각 업소에서 제 나름대로 요리해 판다. 주로 코스로 나오는데, 보통 15만 원 받는다. 바닷가재와 생선회, 각종 어패류가 순서대로 나온다.
어느 것을 안주로 선택하든 어울리는 건 소주다. '해운대 포차촌'에선 알코올 도수 높은 소주가 제격이다. 바닷바람에 저도 소주는 밍밍할 뿐이다. 양주 판다는 곳도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해물라면은 '해운대 포차촌'의 별미로 통한다. 대부분의 업소에서 만들어 낸다. 사람 수에 따라 양이 달라지는데 보통 3만~5만 원 받는다. 라면 하나에 무슨! 그럴 수도 있지만 커다란 냄비에 각종 해물을 넣어 끓이는 라면이다. 들어가는 해물의 면면이 장관이다. 꽃게, 전복, 해삼, 바지락, 담치, 낙지…. 얼큰하고 시원하며 든든하다. 그래서 지나치게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른 거 안 시키고 이 해물라면 먹으러 이곳 포차촌 찾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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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 아지매의 살가운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해운대 포차`의 또다른 매력이다. |
#파도 소리 들으며 한 잔, 그 낭만에 사는 시름 스러져"에이, 내가 칼 들고 장사한다고 강도로 아시나. 전혀 안 그래요. 적어도 손님한테 미안타 싶은 생각 안 들 정도로는 내놓습니다."
이곳 '해운대 포차촌'의 상인연합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재희(57) 씨가 정색을 하며 그리 말한다. 여기서 서너 명이 제법 여유있게 먹고 마시려면 10만 원 정도는 족히 나가야 한다. 포장마차로서는 비싸다는 느낌.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이 씨의 얘기다.
"제 시어머니가 40여 년 동백섬 밑 자갈마당에서 이런 거 팔다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그때도, 그러니까 1980년대에도 빨간 멍게 이런 거 한 접시에 1만 원 했어요. 낙지는 2만 원. 지금도 가격에 거의 변함이 없어요. 제가 해운대에서 포장마차 한 지가 30년이 훨씬 넘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낙지를 못 팔았어요. 낙지 받아올 때 평소 1㎏에 비싸봐야 12만 원이었는데, 올해는 20만 원이 넘은 겁니다. 도저히 팔 수가 없었어요. 재료가 그만큼 비싸다니까. 우리가 싸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비싸다고도 못해요."

여하튼 비싸면 비싼 대로 그 값어치를 하면 불만은 없는 법. 이 씨는 손님들이 값 치르고 나설 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나름 정성을 다한다 했다.
"밥까지 되냐고 미리 묻는 단골이 가끔 있어요. 원래 밥은 안 해드리거든요. 그렇지만 단골이니까, 미리 시장 봐놨다가, 찌개 같은 거 끓이고 냄비에 밥 해서 내드려요. 또 손님들이 이런 거 해 달라, 저런 요리 해 달라 그러면 다 해 드려요. 안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 포장마차 대부분 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포장마차 주인 성향 잘 보고 골라서 단골이 되라는 것이다. 주인과 친해지면 없던 안주가 덤으로 더 나오고, 잘하면 값도 한참 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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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내음 솔솔 나는 '해운대 포차'에서 술 마시는 즐거움. 고급 술집이 부럽지 않다. |
주인 아지매의 그런 살가움, 하도 싱싱해 먹는 사람 속까지 바다색으로 물들일 것 같은 해산물, 솔솔 스쳐가는 바다내음과 파도소리…. '해운대 포차촌'에는 그런 정과 맛, 낭만이 있는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때에는 모니카 벨루치 혹은 탕웨이가 그런 매력에 이끌려 '해운대 포차촌'을 찾지는 않을까….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