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오늘을 보다
입력 : 2012-09-20 08:00:20 수정 : 2012-09-20 14:34:18
흥행돌풍, 해외수상 쾌거… 성공시대 열었다
용의자X"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다시 시작됐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 담당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2000년 중반 이후 침체했던 한국영화가 지난해부터 활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래서일까. 부산에서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파노라마' 섹션에는 전년보다 2편 늘어난 17편이 메뉴판에 올랐다. '제2의 빨간 마후라'인 김동원 감독의 'R2B 리턴투베이스'까지 넣으면 18편으로, 이 중 5편이 월드 프리미어.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의 장에서 각양각색의 우리 영화들을 좀 더 보여 주고 싶은 살가운 마음이 녹아있는 듯하다.
침체기 겪다 작년부터 활황
파노라마 섹션에 17편 올라
'뒷담화…' '용의자X' 등
중견과 신예의 문제작 선봬
해외영화제 수상·화제작과
올 한해 흥행작도 목록에  |
| 내가 고백을 하면 |
■중견과 신예의 문제작
주목받는 중견과 떠오르는 신예의 '문제작'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용의자X' '내가 고백을 하면' '터치' '창수' 등이 주인공들.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는 전작 '여배우들'보다 한 발 더 나간 다큐식 드라마이다. 배우 이제훈과 함께 올 영화제 폐막식 사회를 맡게 된 방은진 감독의 '용의자X'는 일본의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을 원작으로 빚어낸 미스터리 드라마. 집착적 사랑을 둘러싸고 얽히고설키는 구성과 수학천재 역을 맡은 류승범의 이미지 변신이 인상적이다.
민병훈 감독의 '터치'는 사연 많은 세 식구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이자 향후 완결될 '생명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다. 김지영의 연기가 '발견'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다. 조성규 감독의 '내가 고백을 하면'은 피곤한 서울 생활을 피해 주말마다 강릉을 찾는 영화감독, 문화생활을 위해 주말마다 서울로 향하는 가정방문 간호사를 두 축 삼아 전개되는 관계의 드라마로 김태우, 예지원의 연기 앙상블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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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수 |
■해외에서 화려한 조명 세례받다해외 영화제 진출 후 금의환향한 작품도 다시 음미할 수 있다. 올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단연 돋보인다. 김 감독이 아니면 상상할 수도, 구현할 수도 없는 충격적 설정과 반전이 영화를 관통한다. 전작 '아멘'에서 예시된 사랑과 희망, 구원의 조짐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퀴어 라이온 상'을 받은 전규환 감독의 '무게'도 공개된다. 영화의 부제 '정 씨의 슬픈 이야기'가 암시하듯 곱사등이 정 씨의 사연을 축으로, 각양각색의 주변 캐릭터들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사연을 쫓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감독 특유의 반복과 변주가 돋보이는 전형적 '홍상수표 영화'다. 올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선보이며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프랑스 국민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해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역시 최상류층 집안의 치부를 까발림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을 비판하는 도발적 문제작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르네상스 선도하는 한국영화
올 한해 충무로 흥행작들도 화려한 부산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 '건축학 개론' '은교' '화차' '후궁: 제왕의 첩'이 주인공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부산의 조폭 세계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범죄 드라마다. 전국 410만 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멜로영화 박스 오피스 정상에 오른 '건축학 개론'은 연초 화제를 몰고 다녔던 멜로물로 15년의 시차를 두고 펼쳐지는 첫 사랑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흥을 선사한다.
정지우 감독의 '은교'는 국산 멜로영화의 결정적 진화란 평가를 받았고,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삶 자체가 가짜인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남자, 남자의 사촌 형인 형사를 축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애욕의 정사(情事), 광기의 정사(政事)'라는 영화 카피가 암시하듯 '후궁'은 그저 평범한 성애물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김대승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조여정의 열연 덕에 문제적 사극으로 재탄생했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