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비아시아 최고 신인 감독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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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가족들도 '낭떠러지'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모든 뮤지션은 개자식이다

비아시아권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을 상영하는 섹션인 '플래시 포워드'는 비아시아권 최고 신인감독을 가리는 경쟁부문이다. 올해는 콜롬비아를 비롯해 에스토니아, 체코,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에서 8편의 작품이 선정됐다.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자국 외 최초 상영) 5편,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상영) 3편으로 월드프리미어만을 고집하지 않고 작품성 위주로 선정해 이전보다 작품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고 한다.

비아시아권 감독이 보여주는 작품 경향의 큰 틀은 '위기'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에서도 상반기엔 학교 폭력을 비롯한 교육의 위기, 하반기엔 아동 성폭력과 같은 사회의 위기가 휩쓸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인 것 같다"며 "가족의 해체, 공동체의 위기 등 젊은 감독이 느끼는 위기가 영화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술중독 엄마와 딸 '엘리제를…'
공장 주변 방황 10대들 '철강'
뮤지션의 고뇌 '…개자식이다'
철로서 사는 가족 '꽃봉오리'
재개발 투쟁 실화 '아넬리' 등

공동체 위기 공통적으로 담아



위기 사회에서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다름 아닌 여성.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개인, 특히 여성이 겪는 위기다. '베를린 천사의 시'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볼프강 딘즈라게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통해 한 여성의 정신적 위기와 소녀의 성장이야기를 담았다. 간호사인 엄마는 술에 취해 '멘붕'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딸 엘리제는 이런 엄마를 돌보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엘리제를 위하여

이탈리아 스테파노 모르디니의 '철강'은 철강 공장이 있는 쇠락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10대 소녀의 성장영화다. 중학교 졸업반인 안나는 여자 친구와의 우정, 남자를 둘러싼 친구와의 삼각관계, 성적 타락 등 10대가 겪을 수 있는 여러 위기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철강 공장에서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노동자 계급이 처한 위기도 함께 보여 준다.
철강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에스토니아의 헤레리 사아릭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모든 뮤지션은 개자식이다'는 관습에서 벗어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여성 뮤지션 레일라의 혼란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마약과 음악에 취해 있는 동시대 뮤지션의 모습과 그들의 고뇌 등 이들의 정신적인 방황은 위기의 상태 그 자체를 보여준다.

캐나다 지미 라루슈 감독의 '상처'도 개인의 위기와 연결된다. 어릴 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의 회사원 리처드는 우연히 복수의 기회를 맞이하면서 과거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개인의 위기인 셈이다.

개인의 위기는 그 개인이 속한 한 가족의 위기로도 연결된다. 러시아 프세폴로드 베니그센 감독의 '위기의 상태'는 한 부부의 뺑소니 사건처럼 뜻밖의 상황에서 위기를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다. 러시아의 저명한 소설가이기도 한 프세폴로드 베니그센 감독은 러시아의 영향력 있는 50인에 꼽힐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콜롬비아 알폰소 아코스타 감독의 '균열'은 콜롬비아 감독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플래시 포워드'에 초청됐다. 중남미 국가의 괄목한 만한 성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르셀라의 의문의 죽음 이후 부모님과 남동생은 산골로 떠나 휴식을 가지려 하지만, 산골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악몽으로 변해간다. 잔혹 동화 분위기의 호러 미스터리다. 현악기를 사용한 섬세한 사운드와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등을 통해 신인 감독의 평범한 연출력을 극복했다.

체코 즈데넥 이라스키 감독의 '꽃봉오리'는 철로 위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도박에 빠져 있는 한 가장을 비롯해 그의 아들, 딸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있다. 감독은 여러 혼란한 상황 가운데도 꿈을 놓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다. 작품은 개인의 위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공동체가 붕괴한 체코의 현주소도 보여준다. 체코의 주요 영화상을 받아 주목할 만하다.
아넬리

독일과 스위스 합작 영화인 안제이 파락 감독의 '아넬리' 또한 공동체의 위기를 말한다. 뮌헨 시는 폐허가 된 건물 '아넬리'를 사들여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임대 단지로 개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 당국이 임대단지의 용도를 변경해 재개발하려 하자 사람들은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임대단지 주민은 축제를 열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저항을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팩션으로 다큐멘터리와 같은 감동이 느껴진다.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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