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국내외 유명 감독 신작 및 화제작
입력 : 2012-09-20 07:59:49 수정 : 2012-09-20 14:34:14
잔혹한 고문의 상흔부터 쿠르드족 아픔까지
코뿔소의 계절세계 영화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독의 신작과 화제작이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는다. 국내 60대 감독을 대표하는 거장, 부산을 대표하는 감독과 특정 장르를 고집하는 감독 작품이 선보인다. 쿠르드족 영화를 끊임없이 내놓은 감독과 한·중 최고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도 관객을 찾는다.
올해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영동 1985'는 올해 BIFF 화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서울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고문 앞에서 고민하고 무너질 수 있는 인간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했다. 형사로 분한 배우 이경영의 연기가 섬뜩하다. 센 영화이긴 한데, 코믹한 요소로 관객이 숨 쉴 수 있는 여유도 준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청소년도 역사수업이라고 생각하고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건, 역사의 치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됐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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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동 1985 |
정지영·박철수 두 감독의
대조적인 작품세계 비교 기회
전수일·김성홍 감독도 출품
종교·소수민족 문제 다룬
해외영화들의 안목 눈길
출연진 화려한 수작 등 풍성박철수 감독은 영화 'B·E·D'를 내놓았다. 전형적인 남녀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인생은 침대에서 시작해 침대에서 끝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성이라는 욕망을 통해 본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국내 60대를 대표하는 정지영 감독과 박철수 감독의 대조적인 영화 세계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콘돌은 날아간다'는 전수일 감독이 연출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아끼던 소녀가 살해당하는 일과 연관된 신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억눌린 신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는 여인, 피살된 소녀를 사랑했던 소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드라마 전개가 재미있고 연출 디테일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했다. 내용과 카메라 움직임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줄거리는 강력하고 역동적인데, 카메라는 대상을 가만히 바라만 본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극적 반전이 놀라운 전수일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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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
김성홍 감독이 연출한 작품 '닥터'는 성형외과 의사이자 사이코패스인 인물을 다룬 스릴러다. 김 감독은 손톱(1994년), 올가미(1997년) 등 한국형 스릴러를 추구한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편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긴 인물이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기막히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강렬한 반전이 특징이다. 주연을 맡은 김창완이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스릴러는 웬만큼 잘 만들지 않고서는 호평받기 어려운 장르"라며 "그렇지만 꾸준하게 국내 스릴러를 만들어온 김성홍 감독의 의지가 놀랍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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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사 |
눈길을 사로잡는 외국 작품들도 있다. 영화 '정원사'는 '평화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메이삼 마흐말바프 감독이 공동 연출했는데 형식이 상당히 실험적이다. 이스라엘을 찾은 부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이란에서 출발했지만, 박해를 받아 이스라엘로 본거지를 옮긴 종교가 배경이다. 교리는 오로지 '평화'. 신도들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면서 종교활동을 한다. 이곳을 찾은 아버지와 아들은 그 정원에서 깊은 대화를 나눈다. 김지석 BIFF 수석 프로그래머는 "이란 정권의 탄압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감독이 오랜만에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연출한 영화 '코뿔소의 계절'은 이슬람 혁명 때 붙잡힌 부부의 비극을 다뤘다. 혁명 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나 혁명 때 감옥에 들어간 남편은 30년 만에 풀려난다. 그동안 아내는 모진 고난을 겪었고 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다. 영화는 출소한 남편이 아내를 찾아 떠나는 내용을 그렸다. 영화 출연진이 화려하다.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아내 역으로, 이란 영화계의 전설적인 배우 베흐루즈 보수기가 남편으로 나온다. 쿠르드 출신 감독답게 남자 주인공도 쿠르드족으로 그렸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남자 주인공을 통해 탄압당하는 쿠르드족의 아픔을 녹여낸 수작"이라고 말했다.
출연진이 눈길을 끄는 작품은 또 있다. 중국 투자를 받아 허진호 감독이 만든 영화 '위험한 관계'다. 장동건, 장쯔이, 장바이즈가 주연으로 나온다. 쇼데를로 드 라끌로의 소설이 원작이고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순진하고 청순한 여인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과정을 그린 심리 멜로물. 여자 꾀기 선수인 남자가 순수한 여성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지만, 그도 그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칸 영화제에 초청될 때 우여곡절이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촉박해 컴퓨터 그래픽 등 후반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칸 영화제에 선보였던 것.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칸 영화제 때보다 한층 완성도 높은 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