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붉은 꽃이 필 때 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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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의 '담배꽁초 할아버지'로 불리며 청소 봉사와 여러 선행을 펼치던 하계식(70) 씨가 위독하다. 하 씨는 병세가 크게 악화된 상태에서도 나눔을 실천해 온 것으로 확인돼 감동을 주고 있다.

8년 전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하 씨는 매일 아침 달맞이언덕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쓸어 담으며 청소 봉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2011년 4월에는 달맞이언덕에 여름 꽃이 부족하니 배롱나무를 심으라며, 해운대구청에 1천만 원을 전달(본보 2011년 4월 25일 자 3면 보도)했다. 지난 11월에도 환경미화원들이 좀 더 편하게 청소할 수 있도록 오토바이 구매비 200만 원을 기부했다.

'암투병' 전 교장 하계식 씨
달맞이언덕 꽃동산 조성
2년 연속 1천만 원씩 기탁
이웃돕기 등 숨겨진 선행도


하 씨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20일 즈음이다. 하 씨는 야윈 모습으로 구청을 찾아와 1천만 원을 다시 맡기며 "달맞이언덕에 꽃동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부서 직원에게는 "달맞이언덕을 잘 가꿔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구청에서 사정을 알아보니, 하 씨는 지난 10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 중이었다.

숨겨진 선행은 더 있었다. 지난 12월 중순 하 씨는 형편이 어려운 청소 자활근로자 J 씨에게 600만 원을 전달했다. J 씨와는 청소봉사 활동 중 알게 된 사이다. 하 씨는 성실한 J씨의 아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또 자활근로자와 환경미화원 등을 찾아가 겨울 내의 15벌을 선물하기도 했다.

J 씨는 "8년간의 빠짐없는 봉사활동에 오가는 많은 시민이 감동했다"며 "큰형 같은 분으로 주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말했다.

하 씨가 달맞이언덕에 애착을 두게 된 것은 특별한 추억이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하 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애정이 간다"고 밝힌 바가 있다.

간암 판정 뒤에도 하 씨는 꾸준히 달맞이언덕을 거닐었지만, 현재는 산책조차 어려운 상태다. 대화도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 달맞이언덕을 찾은 것은 12월 중순이 마지막이다. 지난해 심은 배롱나무 20여 그루는 꽃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하 씨의 딸은 "아버지가 나무를 가리키며 '빨간 꽃이 필 때 나는 없겠지만, 내 생각을 하면 되겠네'라고 말씀하셨다"며 "늘 가족도 모르게 선행을 하셨는데 아버지답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해운대구청은 현재 하 씨가 부탁한 꽃동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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