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거를 통해 바라보는 해항도시의 미래
/현재열 한국해양대 교수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특정 지점에 군집을 이루어 살아왔다. 이러한 곳에 상업을 하는 사람과 여러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해항도시는 바다와 면해 있기에 언제나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들은 몸만 온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도 가져 왔다. 물건뿐만 아니라 종교와 사상, 풍습, 음식, 언어 등도 따라온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해항도시라는 별난 공간에서 한데 어우러지게 되고 해항도시의 독특한 문화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해항도시의 이런 특성은 물론 과거의 흔적이다. 해항도시는 만들어지는 그때부터 바다를 통해 이룬 수많은 인류 발전의 중심 고리였다. 인류는 문명을 일으켰을 때부터 바다로 나갔고,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 여러 공동체 간의 교류로 한층 더 발전했다. 5천년 정도의 인류 역사를 다루는 역사서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인류가 살아간 모습을 주로 다룬다. 그 내용이란 거칠게 요약하면 거의 전쟁과 파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저렇게 전쟁과 파괴만 일삼은 인류가 어째서 지금 이런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기이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역사서들을 잠시 접어두고 바다를 통해 인류가 걸어온 길을 대략 머리에 그려보자. 그러면 인류의 주요 발전 지점 곳곳에서 바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국경 같은 건 잠시 접어둬도 좋다. 그러면 지금은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유럽인과 아랍인들이 지중해를 통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았는지 보일 것이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유럽의 과학문명과 자본주의 발전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양에서는 어떠했는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인도 쪽 지역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며 문명을 나르고 문자를 나르고 사상을 날랐다. 이런 왕래는 역시 바다를 통해 중국과 동아시아까지 이어졌고 우리의 문화와 생각 다수가 이런 과정 덕분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요즘 일군의 학자들이 한 200년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역동적인 세계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세계는 거의 모두 바다를 통한 교류에서 나타나고 유지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세계의 몰락 또한 바다를 통해서였다.
이 과정 어디에서나 우리는 해항도시를 만나게 된다. 이런 모든 과정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 언제나 해항도시였다. 물론 오늘날에도 바다를 통해 세계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많은 해항도시들을 만날 수 있다. 뉴욕, 상하이, 런던, 샌프란시스코, 함부르크, 마르세유 등 한참을 손꼽을 정도로 많다. 이런 해항도시들은 지금도 그 도시가 소속한 국가의 힘만이 아니라 하나로 돌아가는 역동적인 세계 전체를 지탱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역할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커질 것이다. 지구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바다가 아예 없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까지 부산도 해항도시로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그런 역할은 주로 육지의 논리와 바다를 부차적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수행되었다. 이제 부산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세계의 한 축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단지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의 정치와 문화 등도 한데 어우러져 작동하는 글로벌 해항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 부산의 모습을 우리는 바로 지금 그려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