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칼럼 '판'] 춤출 때 오는 통증
/ 박연정 무용가

"관객들은 네가 전달하는 감정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봐서는 안 돼."
발레리나의 성장기를 담은 만화책 '폴리나'에서 주인공을 혹독하게 연습시키는 스승이 한 말이다. 나는 딱딱한 표지에 담겨 있는 어떤 남자와 그에게 발레를 배우는 한 소녀를 본다. 그 소녀는 만화책의 주인공 '폴리나'. 그녀를 통해 나를 본다. 이 만화책은 2012년 만화비평가 협회(ACBD) 대상, 2011년 만화 전문 서점상 등을 받은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이다.
처음 이 만화를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흑백의 단조로움 속에 회색 톤. 크로키(짧은 시간에 대상의 형태를 순간순간 포착해 간단한 선으로 표현하는 미술 기법)하듯 그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선들이 무용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비베스의 그림을 보면 그의 방대한 습작량을 짐작할 수 있다.
만화에서만 가능한 칸과 칸 사이는 사실 '생략'이다. 이는 공간과 공간 사이를 움직이는 춤과 유사하다. 그 생략 속에 관객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생략이 들어간 부분을 만화에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데, 주인공 '폴리나'를 통해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무대에서 춤꾼이 몸을 사리면 관객은 감동하지 못한다. 춤출 때 오는 통증은 예술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오히려 몸이 멀쩡하면 관객에게 미안하다. "관객들은 네가 전달하는 감정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봐서는 안 돼"라는 만화책 속 보진스키 선생의 말처럼 창작의 고통, 외로움, 부상, 이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관객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관객은 춤꾼의 자연스러운 모습만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술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들키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순간 불편해진다. 본질보다 연민에 둘러싸여 그 다음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올 모든 것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어제의 걸음이 오늘과 다르고, 과거는 이미 미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다짐한다.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춤을 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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