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현의 영화 속 동아시아] ⑭ 영웅본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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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베트남 사이공을 배경으로 제작된 쉬커 감독의 '영웅본색 3'(1989)은 멜로와 액션의 재미 속에 화교 디아스포라의 고단한 삶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암흑가의 여성 주영걸(매염방 분), 그녀를 사랑하는 마크(주윤발 분)와 장지민(양가휘 분)은 고향을 떠나 타국 땅인 홍콩과 베트남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화교다. 주영걸의 보스 하장청(도키토 사부로 분)은 1945년 일본군이 인도차이나에서 퇴각한 뒤, 살아남기 위해 중국 이름으로 개명한 일본인이다.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마크는 베트남에 정착한 사촌 장지민과 삼촌을 공산화 직전의 사이공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왔다가 주영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도움으로 장지민 부자와 함께 홍콩으로 탈출하지만, 하장청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삼촌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탐욕스러운 베트남 정부군 및 하장청의 범죄 조직과 사투를 벌인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본토에 남아 있지만 문화대혁명기의 혼란 때문에 찾아볼 수도 없는 형편이다.

베트남 배경 액션 멜로드라마
화교들의 사랑과 진한 가족애


TV 방송에서는 연일 베트남 난민들의 홍콩행 소식이 들려온다. 이른바 '보트 피플'의 양산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이산(離散)의 운명을 걸머진 디아스포라의 삶은 뿌리 없는 부초처럼 정처 없고 고달프다. 주인공들의 태도에서도 상실감과 무력감은 그대로 드러난다. 마크는 "우리 운명은 다른 사람이 쥐고 있다. 꿈은 도박이다. 이루지 못하면 실망이 크고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꿈을 좇지 않는다"며 패배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하장청은 "인간에겐 선택권이 없다"고 단언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한다. 그에게 강압적 폭력과 집요한 소유욕은 그만의 생존 방식이다. 반면 마크와 주영걸은 생존을 위한 저항의 몸부림 속에서도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의 힘을 발휘한다. 자기 삶의 주체적 선택권을 회복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지민의 아버지가 데려다 키운 초팔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전쟁 중에 부모와 헤어진 베트남인으로, 자신을 돌봐준 장지민 부자와 마크를 친 부모형제처럼 사랑하고, 온몸을 던져 그들을 도운다. 민족 간 경계를 초월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 맺기는 신산한 디아스포라의 삶에 빛을 비춰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영화는 베트남의 상황을 빌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후에 도래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반영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 홍콩은 지금도 세계적인 물류·금융도시의 명성을 유지해 가고 있다.

논설위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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