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외면 받는 국민참여재판] 하. 활성화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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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의한 사법' 적극 홍보하고 참여 높일 유인책 마련해야

지난 2008년 대구지법에서 국내 최초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에게 참여재판은 생소하다. 사법의 민주화와 사법제도 신뢰 제고를 위해 만들어진 한국형 배심원제가 아직까지는 국민들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의 정착을 위해선 불출석 과태료란 충격요법 보다는 적극적인 홍보와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인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홍보 선행돼야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에게 굉장히 좋은 재판 제도입니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의심으로 재판이 진행돼 사법불신을 근본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조용한 부산변호사회 회장은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을 강조했다. 직업 법관의 전유물이었던 재판에 대해 일반 국민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국민에 의한 사법'이 실현 가능해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이 더 확대실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잘 몰라 불참, 과태료 '폭탄'
오히려 제도 반감만 부를 수도
출석의 중요성 홍보 선행돼야

재판의 난이도·시간 따라
일당 차등화하는 배려 필요

마음 놓고 참여 사회적 공감 중요
배심원 통지서 받았을 땐
의무 아닌 소중한 권리로 여겨야


조 회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부산지법의 배심원 선정기일 미출석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조치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법원이 불출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또 배심원 출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도 됐겠지만 아직까지 홍보가 널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피해자를 만들게 된다"면서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를 알리는 등 홍보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지역의 또다른 변호사도 "불출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각각 30만~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 과한 느낌이 있다"면서 "국민참여재판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과태료 폭탄'을 맞을 경우 오히려 참여재판에 대한 반감만 가지게 돼 앞으로는 운영의 묘를 잘 살려 나가야 한다"고 했다.

부산지방법원의 한 법관은 "참여재판을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기 위해선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면서 "배심원으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번거로운 의무가 아닌 소중한 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조기 교육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의 사례를 비춰보면 어릴 때 배심원 제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유인책 마련도 필요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의 생계 배려 등을 이유로 대개 하루만에 끝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848건의 국민참여재판 가운데 92.6%인 785건이 하루 만에 재판을 마쳤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재판이 대부분 밤 늦도록 이어지고 새벽까지 밤샘 재판이 이뤄질 때도 있다.

10시간 이상 길게 이어지는 재판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배심원들은 물론 법관과 검사, 변호사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A 씨는 "재판에 처음으로 실제 참여하면서 의미있는 경험을 했지만 자정 가까이 진행된 재판 과정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이 참여재판 배심원 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심원 직무수행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전체의 61%인 56명이 '장시간의 재판 진행'을 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나 재판기록'을 꼽은 배심원은 17명에 불과했다.

현재 선정기일에 법원에 출석한 배심원 후보자에게는 1인당 6만 원을, 사건 심리에 직접 참여하는 배심원단에게는 12만 원을 일당과 여비로 지급한다. 그러나 이 일당 수준이 생계를 포기한 채 하루종일 재판에 매달려야 하는 배심원들에게 큰 유인책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 30~40%에 불과한 배심원 후보자의 출석 비율을 높이려면 일당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용한 회장은 "아직 우리나라의 배심원제는 초창기이기 때문에 배심원 참여를 의무로만 강요하지 말고, 재판의 난이도나 시간에 따라 일당을 차등화 해서 지급하는 등 유인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참여재판이 정착하려면 배심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또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당을 현실화하고 배심원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재판의 질 향상을 위해 밤샘 재판을 지양하고 2~3일에 걸쳐 나눠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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