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변화무쌍한 맛 "박물관 만들어 비교 체험할 수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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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돼지국밥 어떻게 알릴까

부산 서면시장(위)과 평화시장의 돼지국밥 골목.

"돼지국밥 순혈주의는 없어요!"

돼지국밥 맛집을 추천해 달랬더니 뚱딴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돼지국밥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규범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또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만드는 법에 따라 맛의 편차가 크단다. 사상구 모라동의 팔복돼지국밥 손세원(36) 사장은 "돼지국밥은 섬세한 음식"이라며 기존의 '시장통의 투박함'과는 전혀 다른 정의를 내렸다. "세계인이 맛있게 느끼는 국밥을 추구한다"는 젊은 사장의 말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설명을 듣자하니 돼지국밥의 맛에서 중요한 게 육수인데, 집집마다 재료와 끓이는 법이 천차만별이다. 돼지머리, 내장, 잡뼈, 사골, 수육 삶은 물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맛과 냄새가 달라진다.

사골만 고집한다는 두 곳을 찾아갔다. 그중 하나가 해운대 센텀시티의 '장독마을' 기장 가마솥 시설. 노재목(55) 사장은 장작불을 피워 대형 가마솥에서 24시간 사골만을 우려냈다. 서면시장통의 명가국밥 조래영(41) 사장도 '농축 사골'을 강조한다.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뿌연 유백색의 '돼지 설렁탕' 같은 국물인데 맑은 국물을 내는 시중의 많은 돼지국밥집들과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낸다.

이밖에 밥이 담긴 뚝배기에 국물을 부었다 따르는 토렴에 따라, 양념이나 곁들이는 향미채소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고 호불호가 갈린다.

내친김에 부산의 돼지국밥 골목을 누볐다. 지금까지 가본 집보다는 아직 못 가본 집이 더 많아 놀랐다. 똑같은 국밥은 없었다! 맛 있는 국밥이라는 표준은 없고, 자기 입맛에 맞는 집이 있을 뿐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돼지국밥을 먹고 있다. 돼지국밥의 맛이 왜 서로 다른지 미리 알고 먹었다면 그 맛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 도중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부산 밀면 이야기' 기획 전시회를 예로 들어, 돼지국밥도 이같은 조명을 받아야 할 때라는 지적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돼지국밥 애호가를 자처하는 김은민(49·네이버 블로그 '바다보며한잔') 씨는 "돼지국밥만큼 역사성과 향토성, 개성이 짙은 음식이 어디 있느냐"면서 "오래된 가게에 가보면 역사에 걸맞은 스토리텔링이 전혀 안되고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상현 씨는 일본의 라멘을 사례로 들어 스토리텔링과 관광자원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본 후쿠오카를 찾는 한국인이라면 꼭 들르는 '캐널시티'에는 쟁쟁한 라멘전문점들이 자웅을 겨루는 '라멘스타디움'이 있는데 라멘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또 라멘박물관 같이 전통을 보존하고 알리는 시설도 있다고.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막국수로 유명한 춘천에 가면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이 있다. 체험 신청을 하면 직접 메밀을 반죽하고 면을 뽑아내서 먹을 수 있다. 한자리에서 향토음식 메밀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돼지국밥에도 이런 보존, 스토리텔링 기회가 주어지면 어떨까. 개성이 다양한 돼지국밥이 한자리에 모이기만 해도, 어떻게 맛이 달라지는지 설명해주고 비교 시식 체험을 할 수 있다면 파급력이 클 것이다. 음식만큼 추억이 강렬하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흡입력이 강한 것도 없다.

부산시 김기천 식의약품안전과장은 "향토성 강한 음식을 보존하고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한데 '시설'의 경우는 시 차원보다는 민간 투자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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