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같은 미술이 마을을 바꾸다, 삶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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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마을이 미술이다 /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성공적 모델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부산일보 DB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5년 전 부산의 대표적인 낙후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주한 피난민들이 몇십 년 동안 좁은 계단식 산자락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전형적인 '산동네'였다. 2014년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외국에까지 미술마을의 명소로 알려졌다. 2013년 한 해 동안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감천마을을 바꾼 것은 미술이다. 감천문화마을은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두 번 시행된 곳이다. 2009년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란 이름으로 시행됐고, 2012년에는 '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재시행됐다.

감천마을 등 마을미술프로젝트
5년의 발자취와 진행 과정 조명
"안정성·지속성 필요" 문제 제기도


공공미술, 마을이 미술이다 /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
2009년 프로젝트는 산복도로를 따라 조형물을 조성하고 친근감이 드는 벽화들을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마을의 외관과 어우러져 지역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을 길을 따라 제작된 10여 점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치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오거나 새로운 청년들이 이주해 왔으며, 이들은 2012년 '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의 선정과 진행에 직접 개입해 마을을 다시 한 번 바꾸었다.

외관에만 치중하고 실생활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진행돼 주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마을 전체에 대한 예술환경 조성은 실패하기 쉽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2009년 외관 조성에 이어 상하수도, 전기 등 주민 편의시설 개선이 이뤄졌다. 2012년 프로젝트는 마을 내부로 들어가 주민과 소통하고 협의한다는 커뮤니티의 취지를 살렸다. 마을의 빈집을 사들여 개별 집들을 하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조성했다. 사실상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임대가 아닌 매입의 형태는 행정적으로 다양한 업무 협조가 있어야 한다. 감천문화마을의 성공 요인은 기획자, 지역주민, 지자체의 소통과 협력이 잘 이뤄졌다는 데 있다.

'공공미술, 마을이 미술이다'는 '마을과 예술의 접목'을 시도한 공공미술인 마을미술프로젝트 5년의 발자취와 진행 과정을 조명하고 앞으로 과제를 모색한 책이다. 서성록, 임성훈, 고충환, 이선영, 김미진, 이태호 등 미술평론가와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생활 속의 미술을 지향하는 사업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69개 지역이 미술마을로 변모했다. 작가, 마을주민들, 지자체가 모이고 토론해 마을의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 삶의 모습을 반영한 미술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올해에는 7개 지역이 추가됐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설치된 작품 '게와 아이들-그리다'. 소동 제공
제주도 서귀포시 '유토피아로'는 구도심에 대한 개발과 재생을 통한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프로젝트다. '유토피아로(遊土彼我路)'는 '너와 내가 만나 문화를 이야기하며 노니는 곳'이란 뜻이다. 관광명소인 서귀포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해 관광객에 예술적인 정서를 제공하고 구도심 개발과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시작해 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정방폭포, 소라의 성 등을 거쳐 소암기념관에서 멈추는 총 길이 4.3㎞의 '유토피아로'에는 4가지 주제로 41점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유토피아로'는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공공성 개념에 지역의 정체성과 브랜드 디자인을 접목했다. 이를 관광문화상품으로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지역의 독특한 콘텐츠를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례도 흥미롭다. 충북 음성의 '동요마을' 프로젝트는 동요 '고추 먹고 맴맴'의 발상지라는 지역 콘텐츠를 적용했다. 시인 박인환을 테마로 한 강원도 인제의 '시인 박인환-만남, 그 세월이 가면'이나 최명희 소설 '혼불'의 발원지인 구서도역 일원에 다양한 벽화와 조형작품을 설치한 전북 남원의 '마안 서도가 좋아졌등교?'도 마찬가지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문제점과 대안도 제시했다. 이태호 미술평론가는 "복권기금을 활용해 시행되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가 1년 단위 사업이어서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갖기 힘든 구조"라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비전을 수립하고 정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 엮음/소동/288쪽/1만 9천 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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