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세상보기] 5. 잔설 녹이고 봄을 알리는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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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식물'로 불리는 복수초. 이숙희 제공

복수초는 봄의 전령사이다.

입춘 즈음이면 복수초는 새싹을 내기 위해 언 땅과 잔설을 녹이기 시작한다. 볕 바른 산골짜기, 성급한 복수초는 노란 꽃망울까지 내민다. 입춘이라지만 산골짜기는 여전히 엄동설한인데 싹을 내고 꽃을 피우려는 게 참 신기하다.

복수초의 생태를 알면 연금술사의 같은 신기함에 놀라게 된다. 복수초는 스스로 열을 내고 언 땅과 잔설을 녹이며 새싹을 돋우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복수초를 일컬어 '난로 식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은 기온과 일조량 그리고 자외선의 세기에 맞춰 반응하고 개화한다. 개나리나 목련이 한겨울에도 기온이 오르면 제철을 잊고 꽃을 피우는 것도 이런 조건반응의 결과이다. 복수초는 기온도 일조량도 자외선도 부족한 엄동설한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니, 유별난 식물임은 틀림없다.

복수초는 어쩌다 별난 생태를 갖게 되었을까? 복수초는 시베리아 '아무르 강 유역'을 뜻하는 종명(amurensis)에서 보듯 본디 한대식물이다. 몸집도 키도 작은 복수초가 아무르 강 유역에서 고만고만한 식물들과 너르게 살 때만 해도 다른 현화식물처럼 기온이 오르고 언 땅이 풀리면 싹을 냈을 법하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를 때이면 키가 크고 잎이 넓은 식물이 비집고 들어 주변을 독차지하자 고민이 깊어졌다. 게다가 한대지역의 봄과 여름은 매우 짧다. 복수초는 무엇보다 강한 후손을 남기는데 필수인 뚜쟁이 곤충의 외면을 견디기 어려웠다. 큰 꽃을 높이 매단 식물이 늘수록 복수초의 작은 꽃은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은 곤충이 꽃가루를 다른 꽃의 암술에 옮겨줘야 강한 후세를 남길 수 있다. 복수초는 어떤 식물도 시도하지 않은 모험을 감행한다. 모두 겨울잠에 빠진 시간에 서둘러 깨어나 뚜쟁이를 독점하는 전략이다. 관건은 '언 땅과 잔설을 어떻게 녹일 것인가'이다.

복수초는 에너지를 축적하여 발열 성분을 만드는 묘안을 찾았다. 에너지 축적의 비책은 잠이다. 한반도 복수초를 기준으로 연중 생장주기를 보면, 2월에 싹을 뜨기 시작해 3~4월이면 꽃을 피우고, 5월이면 잎이 시들다가 6월부터 휴면기에 든다. 잠자는 듯하지만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하며 축적한다. 복수초의 뿌리에 많이 함유한 심장질환의 약효성분인 강심배당체(强心配糖體)와 가수분해(加水分解) 성분이 그것이다. 이런 성분이 수분과 만나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열을 발산한다. 엄동설한 끝자락에 언 땅과 잔설이 조금이라도 녹으면, 복수초의 뿌리는 즉각 수분을 이용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열을 만든다.

복수초의 발열 비책은 꽃잎에도 숨어 있다. 겹겹의 꽃잎이 피면 마치 밥그릇처럼 오목한 모양새이다. 반사경처럼 햇빛을 가운데로 모아 꽃 내부를 따뜻하게 데워 추위에 움츠린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유혹의 몸짓이다. 게다가 노란 꽃잎은 복사열의 흡수를 도울 뿐 아니라 해빙기 땅 빛깔과 배색을 이루면서 곤충의 눈에 잘 뜨여 일석이조이다.

사람으로 치면 복수초는 노벨 화학상 수상감이다. 그러나 식물계에서 이런 연금술은 다반사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생존경쟁과 환경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변신(변이)을 시도한다. 한대식물인 복수초가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온대지역에서도 살아남으려니 좀 고난도의 연금술을 동원했을 뿐이다.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빠진 나머지 환경대응력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복수초는 반면교사이다. 다음 이야기(2월 6일 자)는 '인동나무'이다.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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