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이 노래 이 명반] 4. 이문세 4집·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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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중음악 판도 바꾼 두 남자의 합작품

대한민국 팝 발라드의 레전드 이문세. 페이퍼레코드 제공

국내 대중음악의 밀리언셀러시대를 만개시켰던 이문세를 '한국 가요계의 레전드'로 견인했던 전설적인 음반이 있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女의 웃음소리뿐', '이별 이야기', '가을이 오면' 등 무수한 히트곡이 수록된 4집. 그리고 '광화문 연가', '시를 위한 시','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붉은 노을' 등 주옥 같은 명곡들이 대거 포진된 5집이다.

한국 팝 발라드 분야 개척·완성한 역사적 앨범
'팝송 일색' 시대 대중가요 위상 강화에 핵심 역할
4집 285만·5집 258만 장 밀리언셀러 등극
격조 높은 음색·감미로운 창법 결합된 최고 명반

1987년, 1988년 즉 LP와 CD 제작이 병행되던 시기에 발표되었기에 오리지널 음원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이문세의 명반 중 4집이 몇 년전 최초로 CD로 발매되었다(올 댓 마스터피스 이문세 4+5). 더불어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이문세 스페셜'이 16%라는 전대미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문세의 명곡들은 다시금 각광받았다.

이문세의 4집, 5집 수록곡들은 80년대 후반까지 외국의 팝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였던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을 급상승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보석 같은 노래들이었다.

■'팝 발라드' 새 장르 개척, 팝송 프로그램 시대 종식

민주화의 열망이 격렬했던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권토중래 시기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조성된 암흑기인 70년대를 지나 긴 동면에서 기지개를 켠 조용필이 일인독주 체재를 구축하는 가운데 실로 다양한 장르음악들이 공존했다.

우선 이문세와 변진섭 등 발라드 가수들과 각종 대학가요제 출신인 송골매 등 캠퍼스밴드, 들국화와 부활, 백두산, 시나위 등의 록 밴드에 의해 발라드와 록 전성시대가 만개했다.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 등 댄스가수들과 조동진을 필두로 남성듀오 어떤날, 시인과 촌장, 김현식, 김광석, 유재하, 김두수 같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에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까지 주류 가요차트에 진입하며 각광받는 흥미로운 현상이 이루어졌다. 팝송을 능가하는 수준 높은 대중가요 명반과 명곡들이 봇물 터지듯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원할 것 같았던 라디오의 팝송 프로그램들도 고품격으로 무장한 무수한 대중가요의 거센 침공에 권좌를 내어주어야 했다. 국내 대중음악계에 '팝 발라드' 장르를 도입하며 성공신화를 세웠던 이문세는 그 주역이었고, 그의 4집과 5집은 대중가요의 위상을 업그레이드한 핵심 중에 핵심인 음반들이었다. 

이문세와 함께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흔든 작곡가 故 이영훈. 부산일보DB
■ 대중가요 히트 보증수표, 최다 음반판매 신기록

이문세를 언급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작곡가 고(故) 이영훈이다. 이 둘의 조합은 적어도 80, 90년대의 무적함대였다.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서 시작된 이들의 히트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고 이영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80, 90년대 최고의 명곡들을 직조했던 최고의 작곡가다. 그는 이문세를 빅 스타로 견인한 1등 공신이었고, 80,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외국의 그것과 필적하게 끌어올린 팝 발라드 장르의 개척자라 평가할 만하다.

그는 발라드와 포크의 모호한 장르적 경계를 현악기가 가미된 클래식 음악기법 도입으로 확실하게 구분시켰다. 팝 발라드로 규정된 장르의 탁월함은 이후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 같은 발라드 황제 급 가수들로 이어졌고, 폭넓은 대중적 사랑을 누리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85년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기존의 대중음악 판도를 뒤흔드는 폭풍을 몰고 올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대중가요에 팝과 클래식을 접목해 격조 깊은 사랑노래를 제시한 고 이영훈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창법으로 노래한 이문세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대중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이문세의 히트곡은 죄다 이영훈이 작곡한 노래로 봐도 무방하다.

150만장이 팔린 3집이 황금콤비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신호탄이었다면, 무려 285만장의 판매기록을 수립한 4집은 그때까지의 사상 최다 음반판매 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문세의 4집(1987년)은 대중가요의 부흥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198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다. 기록적인 음반 판매량는 물론이고 대중의 절대 지지를 얻어내며 가요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내용(음악성)과 형식(흥행) 모두 완벽한 성공작이었다. 
이문세 4집(왼쪽)과 5집 표지.
■팝 발라드의 정점 4집, 팝 발라드의 완성 5집

1987년 칙칙한 분위기의 이문세 4집 초반이 제작되었다. 제작사는 히트를 예감하고 발 빠르게 뮤지션 정보를 보강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분위기로 이문세 사진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재발매 음반을 제작했다. 대박으로 이어진 4집 앨범은 제작사 킹 프러덕션이 메이저급 음반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최상의 음질을 뽐내는 이례적인 12인치 45회전 싱글 LP의 추가 제작은 뜨거운 팬들의 호응에 보답하기 위한 일종의 보너스 음반이었다.

대중가요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한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과 '그녀의 웃음소리뿐'. 김동석 오케스트라의 현악연주가 인상적인 '밤이 머무는 곳에'와 고은희와 함께 노래한 '이별 이야기', 팝과 록의 접목을 통해 흥겨운 비트를 선사한 '그대 나를 보면', 리듬감이 느껴지는 경쾌한 포크버전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슬픈 미소', 그리고 이문세의 가성이 흥미로운 '굿바이' 등 모든 수록곡들은 각기 다른 질감을 제시했다. 또한 김광석, 함춘호 등 뛰어난 연주자들의 세션과 사랑과 평화 출신 김명곤의 편곡은 앨범의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엄청난 대중적 반응 속에 이어진 1988년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했다. 킹레코드는 당시 3천300원이던 음반 값을 일방적으로 4천 원으로 인상해 소매상들의 불매 운동이 벌어졌으나 소용없었다. 대중은 음반의 가격보다 음악의 질을 중시했고, 그 결과는 258만 장의 판매고로 이어졌다. 또한 외국 팝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낮은 가격이 책정되었던 가요 음반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문세 5집의 타이틀인 '광화문 연가'는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난 고 이영훈의 대표작임과 동시에 이문세-고 이영훈 콤비가 발표한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옛사랑'과 쌍벽을 이루는 불후의 명곡이다.

5집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고 이영훈이 감성적으로 최정점에 올랐음을 확인시킨다. 그는 대중가요의 가장 흔한 소재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천박함과 통속과는 멀찍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상실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되 과잉적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담담하고 담백한 시적인 가사를 통해 가슴 찡한 격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성철·페이퍼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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