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투신 사태] 유서에 "희생 필요하다면 감당"… 학내 '反교육부 기류' 최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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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사회 반발 격화…김기섭 총장 전격 사퇴

17일 오후 고현철 교수의 투신 현장인 부산 금정구 부산대 본관 앞에서 교수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대 국문학과 고현철(54) 교수가 "총장 직선제 약속 이행"을 외치며 대학 본관 4층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이 대학에서 총장 직선제 학칙이 폐지된 지 3년, 총장이 임기 넉 달 반을 남기고 '간선제 추진'를 재차 못박은 지 2주, 이 대학 교수회장이 단식 농성을 시작한 지 12일째 되는 날이었다.

"교육부 억압에 부산대가 굴복했다"
직·간선제 놓고 갈등 심화되자
총장 배출한 인문대 교수진 실망감
고 교수도 "대학이 민주주의 보루"

25일 예정된 간선제 심의 재검토
교육부 간선제 정책 철회 요구 확산

■그날 무슨 일이


부산대 교수회는 17일 오전 내내 바빴다. 오전 8시 좀 넘어 본관 현관 앞 손띠시위가 첫 일정이었다. 교수들 20여 명이 붉은색으로 '총장선출제도 투표약속 이행하라'고 적힌 흰띠를 양손에 펼쳐들고 김기섭 총장의 출근을 기다렸다. 그러나 총장은 오지 않았고, "서울 출장이 잡혔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날은 김 총장이 지난 한 주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교수들은 출근하던 안홍배 부총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교수회장과 교수들이 목숨걸고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데 휴가를 갔다가 일정에도 없던 출장을 핑계로 학내 문제를 피해버리는 처사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오전 11시부터 부산대교수회 차정인 부회장의 경과보고와 김재호 회장의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단식 12일째인 김 회장은 수척한 모습으로 △총장과 집행부 사퇴 △일방적 간선제 규정 개정 중단 △교육부의 대학자율 보장을 요구했다.

전국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권진헌 상임의장(강원대), 전국공무원노조김영훈 본부장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대학민주화의 마지막 보루인 부산대 총장직선제 사수 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왜 이렇게까지 왔나

고 교수가 당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는 "민주주의가 억압받고 있는데도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무뎌져있는 현실","방법은 충격요법밖에", "희생이 필요하면 감당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2012년 교육부의 '국립대 선진화 방안'과 부산대의 총장 직선제 학칙 폐지로 촉발된 갈등이 3년을 끌어오는 동안, 고 교수를 비롯한 부산대 교수사회는 이 문제를 '직선제냐 간선제냐' 하는 선거방식이나 '행·재정적 피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지 않았다. "교육부가 강제하고, 부산대는 비판 없이 이에 굴종하며, 교수들을 기만했다"(차정인 부회장)는 데 대한 분노와 통탄이 무엇보다 컸다.

국립대를 대표하는 부산대 교수로서의 자존심에 입은 상처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기섭 총장이 속했던 인문대학 교수들은 총장 선거 방식을 둘러싼 김 총장의 행보에 특히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인문대 소속 한 원로 교수는 "고 교수는 전형적 학자에 교육자로, 동료들을 만나면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교수회 활동을 함께하지 못하는 점을 미안해했다"며 "고 교수의 부인도 빈소를 찾은 김 총장에게 '남편이 지난 3년 반 동안 총장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에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말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파장은

간선제 추진 일정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17일은 간선제(총추위안) 규정 개정을 위한 의견 수렴 기간 중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인 18일 규정 개정 심의에 들어가 25일 교무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간선제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김 총장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 교수가 실려간 병원과 김재호 교수회장의 병원을 잇따라 찾은 뒤 긴급 보직자회의를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강압적 국립대 총장 간선제 추진 정책에 대한 교수사회의 반발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대 교수들 100여 명은 17일 본관 건물 앞에 자발적으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교수회 차정인 부회장은 "총장 사퇴를 관철하고, 대학본부의 간선제 강행을 중단시키는 한편, 교육부에 대해서도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을 철회하도록 모든 국립대와 함께 싸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이번 사태 파문이 대학사회나 교수단체의 반발을 넘어 민주주의가 침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회 전반에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김건수·최혜규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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