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남북 이산가족 상봉 30년… 역사와 현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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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신청 13만 명, 이 중 절반이 한 못 풀고 눈감아

2000년 8월 15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남쪽에서 온 동생 정명희(왼쪽·72) 씨가 북한의 언니 덕화(85) 씨와 만나 울부짖고 있다. 부산일보DB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라 10월 초·중순께 금강산에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 2월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19차 상봉에 이어 20개월 만이다.

1985년 첫 성사 후 15년간 스톱
2000년 정상회담 후 본격화 불구
대면상봉 수혜 고작 1천956명

南 인도적 접근, 北 정치적 이용
동상이몽에 초라한 성적표
고령 이산가족 내일 기약 못 해
정례화·서신교환 등 특단책 필요


올해는 남북 분단 70주년이자 한국전쟁(6·25 전쟁) 65주년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지 30주년을 맞는 해여서그 의미가 각별하다.

어느덧 남북 이산가족 상봉 역사가 '한 세대(30년)'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 역사가 30년이 됐지만 남북 이산가족들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다수의 이산가족들이 60년 이상의 세월을 서신교환이나 상봉은커녕 서로 생사와 주소도 알지 못하는 완전한 단절 속에서 이산의 고통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벌써 남측 이산가족 신청자 중 절반 가까이 북측 부모나 형제, 아들·딸, 친척 등 혈육의 생사 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북 이산가족 1천만 명

1945년 8·15 광복과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을 거치는 과정에서 남과 북에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생겨났다.

비정부 민간단체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분단 국가인 한반도에는 남과 북을 통틀어 1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존재한다.

남측 이산가족은 500만 명 이상으로, 이들의 대다수는 본래 북한 땅이 고향이면서 공산주의 학정(虐政)을 피해 남한 땅으로 이주한 월남동포들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미귀환 국군포로나 6·25 전후 납북자, 미귀환 의용군, 월북자 등도 이산가족에 포함된다.

남북한은 전 세계의 긴장완화 분위기에 힘입어 1972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시작으로 대화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 쌍방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권장하는 심인(사람을 찾음)사업 방식에 따라 이산가족 전원을 대상으로 △생사와 주소의 확인 및 통보 △서신교환 △상봉과 상호 방문 △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 등 5개 항목으로 된 본회담 의제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남북 간에는 모두 151회에 걸친 적십자회담이 개최되었지만,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논의는 북측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단발적으로나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 이뤄진 건 1985년.

1985년 9월 20~23일 '남북한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이 꾸려져 서울과 평양에서 역사적인 첫 상봉(교환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 2000년 8월 15~18일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까지 무려 15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2000년부터 2014년 2월까지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모두 19 차례에 걸쳐 부정기적으로 이뤄졌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 채택을 계기로 그 해 8월 15~18일 서울과 평양에서 역사적인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상봉(남측 35명, 북측 30명)이 있었다. 이른바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다.

서울·평양에서의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상봉은 2001년 2월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장소를 서울·평양이 아닌 금강산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02년 4월 제4차 상봉부터 지난해 2월 제19차 상봉까지는 예외없이 금강산에서 '대면상봉' 형식으로 진행돼왔다.

지난 2005년 8월에 시작된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2007년 11월까지 7차례 진행됐다.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수원 등 남쪽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초라한 이산가족 상봉 성적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실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대한적십자사 등을 통해 접수된 남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 9천여 명.

이 가운데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 동안 이뤄진 19차례의 '대면상봉' 수혜자는 고작 1천956명에 불과하다. 7차례의 '화상상봉' 수혜자는 279명에 그쳤다. 단순계산해보면 대면상봉의 경우 남측 이산가족 신청자 기준으로 연평균 130명꼴로 상봉이 이뤄진 게 전부다. 화상상봉까지 합치더라도 연평균 상봉 수혜자는 148.6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대부분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고령자들이라는 점이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http://reunion.unikorea.go.kr)에서 제공하는 '이산가족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올해 7월 말 현재까지 '상봉'을 신청한 남측 이산가족은 모두 12만 9천698명.

이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6만 3천406명(48.9%)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5년간 매년 4천227명꼴로 이산가족이 별세한 셈이다.

나머지 생존해 있는 6만 6천292명의 경우도 80세 이상이 전체의 54.3%를 차지하고 있다.

생존한 이산가족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6년 안에 모두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추정했다.

남측은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반면, 북측은 대남 협상용 도구 등으로 활용해왔다.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비롯해 △이산가족 서신교환 및 화상상봉 △상봉 정례화 △상봉 대상 대폭 확대 △추석·설 명절 성묘 방문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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