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영화 속 웃음, 곱씹어보면 되게 슬프다" (인터뷰)

[비에스투데이 황성운 기자]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 '서부전선'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했지만, 그 속살은 설경구와 여진구가 빚어내는 코미디로 가득 차 있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집으로'를 부르짖는 남한군 남복(설경구)과 북한군 영광(여진구)의 부딪힘이 웃음을 만든다.
이에 설경구는 비에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코미디라 생각 안 했다"며 "서로 부딪혀야 했고, 그런 몸싸움에서 오는 우스꽝스러움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무조건 웃기려고 한 건 벌에 쏘인 분장 정도"라고 답했다.
설경구의 말처럼, 웃음을 위해서는 두 사람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때문에 엄청난(?) 나이 차이를 넘어서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였다.
설경구는 "호흡이 안 좋으면 큰일 날 영화"라고 웃은 뒤 "나이 차이는 생각하지 않고, 적이라고 생각했다"며 "현장에서도 호흡이나 대사를 맞춰보기보다 영화에서처럼 남복이 영광 대하듯 했다"고 호흡 비결을 공개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막 싸움에 가깝다. 탱크 속 좁은 공간에서 우당탕 치고받는다. 이에 대해 설경구는 "탱크 내부가 다 쇳덩이라 약속은 정확히 지켜야 했다"면서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진구가 던진 감자에 눈을 맞았다. 눈물이 핑 도는데 '그나마 익은 감자라서 덜 아프잖아요'라고 하더라"고 재밌는 일화를 말했다.
두 사람의 주요 무대는 탱크. 이번 영화를 위해 직접 제작했다. 또 몇 달 동안 함께 하다 보니 정이 들었단다. 더 나아가 탱크에 감정을 느꼈다고.
그는 "무식해서 용감했던 것 같다"며 "촬영 들어가고 탱크를 직접 만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탱크를 만나는 날, 드디어 만나는구나 싶었는데 출발을 안 하더라. 그래서 다시 제작했는데 이번엔 속도가 안 나더라. 그래도 가는 게 고마울 정도"라고 웃음 지었다.
"진짜 정들어요. 비 오면 서글퍼 보이고, 홀로 우두커니 있는 걸 보면 외로워 보인다니까요. 때론 든든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석 달 있다 보면 정말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웃음)"
'서부전선'은 천성일 작가의 첫 연출작으로도 관심이다. 천 감독은 영화 '해적' '7급 공무원', 드라마 '추노' 등을 집필한 인기 작가다.
설경구는 "처음 2009년에 책을 받았을 땐 작가 천성일이었다. 당시 여러 이유로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 감독 천성일이더라"며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출연에) 고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글은 혼자 하는 거고, 감독은 현장에서 하나하나 다 정해줘야 한다.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믹이 주를 이루곤 있지만, 어쨌든 전쟁 영화의 테두리에 속해 있다. 전쟁과는 상관없는 순수하고 순박한 두 사람을 내세워 전쟁의 허망함을 얘기한다. 이 때문에 설경구는 전쟁터에 나갔음에도 군인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죽음보다는 집에 갈 생각만 했다.
설경구는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농사꾼, 학생한테 군복 입혀놓고, 전쟁 난 곳에 던져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각자 집에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 비문과 탱크가 있어야 한다. 이처럼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지점에서 부딪히는 것"이라며 "다른 한편에선 전쟁하고 있지만, 여긴 다른 세상이다. 그런데 그 웃음이 곱씹어보면 되게 슬프다"고 말했다.
사진=비에스투데이 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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