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비극적인 '북유럽 신화'의 매력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헬렌 A. 거버

게르만 신화의 일부인 북유럽 신화는 음악, 영화 등 예술 영역에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다소 덜 알려졌다. 사진은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호빗: 다섯 군대 전투' 중 한 장면. 부산일보DB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 '나니아 연대기'의 공통점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힌트 하나 더. '토르'를 덧붙이면 아마 무릎을 탁 칠지 모르겠다. 이들 작품은 모두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유럽 신화는 유럽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 무게에 걸맞은 명성을 얻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북유럽 신화의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 기독교 문화가 대거 유입되면서 북유럽 신화가 이교도 문화로 규정된 탓이다.

유럽서 이교도 문화로 뒷전
근대 들어 음악 등서 회자
"신도 인간처럼 유한하다"
합리성에 바탕 둔 믿음 독특

영국 역사가 헬렌 A. 거버는 대표적인 예로 사랑의 여신이자 미의 여신인 '프레이야'를 꼽았다. 프레이야가 대지의 여신이기도 한 만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북유럽에서는 종교 행사 때 프레이야의 건강을 빌며 축배를 마시는 관습이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 유입으로 성모 마리아나 성녀 제르투르다가 프레이야 자리를 차지했다. 프레이야는 다른 이교도 신들과 마찬가지로 악마 또는 마녀로 규정됐다.

그래도 북유럽 신화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이 수백 년간에 걸쳐 기독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11세기까지 개종하지 않고 버틴 덕분이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북유럽 신화는 근대 들어 음악 등 예술 영역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서양 고전의 문화적 토대를 이루었다.

북유럽 신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책 한 권이 나왔다. 100여 년 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됐던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는 운문 형식의 '옛 에다'와 이를 바탕으로 한 산문 형식의 '새 에다'를 혼용해 북유럽 신화 체계를 알기 쉽게 풀어내 오늘날까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창조주의 선한 힘이 악에 맞서 끊임없이 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북유럽 신화는 다른 신화와 달리 음울한 유머와 신화 전반에 흐르는 어둡고 비극적인 줄거리라는 독특한 특색이 있다.

무엇보다도, 북유럽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신들도 인간처럼 유한한 종족이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신들에게 시작(탄생)이 있었으므로 끝(죽음)도 반드시 있어야 이치에 맞는다고 본, 북유럽 특유의 합리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실제로 대전투인 라그나로크 이후 신들 대부분은 전사하고, 신들의 세상은 혼돈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신화는 불행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세상이 파괴되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두 '인간'이 살아남았다. 일부 살아남은 신 역시 평화 속에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악이 소멸되고 폐허 속에서 선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 말미에 소개된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 비교도 주목할 만하다. 지리적·문화적 환경이 크게 다른 두 신화에서 발견되는 유사성 때문에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헬렌 A. 거버 지음/김혜연 옮김/책읽는귀족/584쪽/2만 5천 원.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