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폐사지를 찾아서] 29. 열암곡 마애불과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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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좀 일으켜 주오" 엎어진 채 모진 세월 버텨온 마애불

1천300여 년 동안 엎어져 있는 열암곡 마애불을 바로 세우는 것은 기술과 장비가 최첨단이라는 우리 시대에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경주 남산의 열암곡은

서남산을 지나 남으로 돌아

다시 남동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문화 유적도 많지 않아 일반인은

잘 찾지 않는다.

계곡 옆에 목이 잘린 채

땅바닥에 앉아 있던 석불좌상과

그 옆에 깨어진 광배조각과

기와 파편이 흩어진

처연하고쓸쓸했던 이름 모를 절터였다.

이런 열암곡이 2005년 10월

목 없는 불상의 불두를 찾아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2007년 6월에는 세기의 발견이라고

흥분했던 마애대불이 나와

한때 뻔질나게 사람들이 찾았다.

바위가 넘어지면서

머리가 바위에 닿아 얼굴을

보호했던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더욱 가치가 있다.

■하얀 겨울햇살에 나그네 되어

겨울을 밀어내면서 봄으로 성큼 다가가는 2월의 햇살은 여린 새악시 마음 같아 따뜻한 온기가 스며온다. 주차장이 있는 입구에서 열암곡 마애불까지는 700m를 표시해 놓았다. 약간 경사는 있어도 그렇게 힘든 산길은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올랐다. 산죽으로 보아 폐사지가 가까운 모양이다. 석축도 쌓고 흩어진 땅바닥에 앉아있던 석불좌상도 온전하게 세워 머리도 복원해 놓았다. 넘어져 있는 큰 마애불은 시커먼 천막으로 씌워놓았다. 참 보기 흉했다.

오를 때도 여기저기 바위가 많았는데 여기는 거대한 바위가 줄 지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이렇게 바위가 줄 지어 있다고 열암곡(列岩谷)이라 부른다. 앞으로 넘어진 마애불은 처음 발견되었던 모습인데 천막으로 꽁꽁 둘러놓았다. 정면과 마애불이 보이는 부분만 철망 사이로 보게 해 놓았다. 화려한 절이나 아름다운 정자는 보는 사람의 경배와 관조의 대상이다. 부처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야가 일품인 것이다. 여기도 부처의 시선에서 보니 벌판과 산과 들이 아스라하게 펼쳐져 속삭이듯 물결친다.

바닥 암반과 불과 5㎝ 거리
8세기 지진으로 무너진 듯

1천300년간 엎어져 있지만
오뚝한 코·온화한 미소 돋봬

머리 붙여 복원한 석불좌상
그 옆에 흩어진 와편 수두룩
이름 모를 절터엔 쓸쓸함 가득

■인연은 인연을 낳고


간밤에 이 골짜기가 불에 활활 타고 있을 때 목 없는 석불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불길을 막고 있는 꿈을 꾼 임희숙 문화유산해설사는 다음날 여기서 50m 아래 대밭에서 뒹굴고 있는 불상 머리를 발견한다. 이를 계기로 국립 경주 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다가 금세기 최대의 사건이라는 이 마애대불을 발견한다. 그 인연은 여기를 대대적으로 발굴 보수 정비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철망 사이로 한참을 살펴보았다. 머리와 배가 닿은 바위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다. 얼굴에 돌출되어 있는 코가 바위에 닿으려고 한다. 불과 5㎝ 떨어져 '5㎝의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했다. 옆으로도 아니고 정면으로 넘어졌는데 이렇게 온전한 것은 신의 한 수고 부처의 가피다. 70t의 거대한 바위가 넘어졌을 때 신체 중 가장 약한 얼굴이 바위와 부딪혔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계곡 옆에 목이 잘린 채 있던 석불좌상을 온전하게 세워 머리도 복원해 놓았다. 하지만 코와 입이 사라지는 상처를 입었다.
■마애불은 언제 왜 넘어졌을까.

이 마애불은 신라 불상의 절정기인 8세기 중반을 지난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로 본다. 풍화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넘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큰 바위가 넘어지려면 큰 장마나 지진일 가능성뿐이다. 36대 혜공왕(765~780년) 말년에서 42대 흥덕왕(826~836년) 초이다. 장마와 지진 등 자연재해 기록이 많이 등장하고 반란으로 민심도 흉흉하다. 힘센 세력이 권력다툼을 하고, 귀족의 탐욕은 35금입택의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백성들은 기아와 기근에 시달리는 모순덩어리의 시기였다.

눈과 비가 내리는 정도로 이 바위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혜공왕 4년(768년)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으며 샘과 우물이 모두 마르고…" 와 원성왕 13년(797년) "큰물이 져서 산이 무너졌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1,300여 년 동안 엎어져 있는 이 마애불을 세울 수 없을까. 헬리콥터는 50t 정도는 세울 수 있어도 약 70t의 바위는 안 된다. 포클레인은 진입로 확보에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기술과 장비가 최첨단이라는 우리시대에 또 하나의 숙제다.

■이름 모를 폐사지

이 정도의 마애불과 석불좌상이라면 기록에 남을 만도 한데 알 수가 없다. 자연재해에다 기아와 빈곤, 권력다툼에 이 마애불이라도 만들어 구원의 염원을 빌었을까. 실제로 이 당시에 여자아이(키 125㎝)의 인골이 신라 우물에서 나왔다. 추정컨대 자연재해에 대한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본다. 
쓰러진 마애불에 씌워 놓은 천막 왼쪽으로 석불좌상이 보인다.
온갖 상상을 하면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유독 얼굴에 시선이 멈춘다. 코는 골이 굴곡진 우리 코가 아니고 성형미인 같이 콧날을 세워서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복스러운 얼굴에 가늘게 다문 입술은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은 모습 같다. 돌 위에 앉은 차가움이 전해오고 한 줄기 골바람이 겨울의 적막을 스친다. 군데군데에는 흰 눈이 쌓여있고 햇볕 따스한 열암곡에 온 산천이 고요하다.

침묵이다. 누워 있는 불상도 저기 앉아 있는 불상도. 천천히 일어나 목을 다시 붙여 복원해 놓은 석불에 갔다. 코와 입술이 떨어져 나가도 당당함은 잃지 않았다. 비록 세파에 시달려 목이 잘리는 상처를 입어도 자신의 자존심과 영혼의 가치관을 지키는 모습 같아 마음이 맑아진다. 당당한 어깨와 가슴은 럭비선수 같은 볼륨감에 팔뚝과 목도 굵다. 오른손은 힘없이 부드럽게 무릎에 얹어 긴 손가락으로 항마촉지형을 하고 있다. 선정인의 자세를 취한 오른손 안에는 누군가 동전 몇 닢을 올려놓았다. 무엇을 서원했을까. 바람은 차도 따스한 햇볕을 가슴에 안고 내려왔다.

kjsuojae@hanmail.net


이재호


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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