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29. 015B (공일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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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곡이자 출세곡 '텅 빈 거리에서', 실연의 아픔 달래…

우리 대중음악계 객원 보컬 시스템의 원조 015B. 무소불위의 '015B시대'의 부활을 기다린다.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1990년대 초, 당시 신세대의 감성과 생각을 대변하고 세련된 사운드와 음악적 감각으로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그룹이 있었다. 바로 '015B'(공일오비)이다.

마왕 신해철을 주축으로 한 1988년 MBC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그룹 '무한궤도'의 멤버였던 정석원(키보드), 조형곤(베이스)이 '무한궤도' 해산 이후, 정석원의 형 장호일(기타·본명 정기원)과 함께 1990년에 결성한 그룹이다.

그룹 '무한궤도' 해산 이후 결성
정석원·조형곤에 장호일 합세

국내 첫 '객원 보컬' 러브콜
윤종신·김태우·김돈규 등 대박

4집,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2006년 7집 내면서 다시 뭉쳐


■대중음악계 객원 보컬 시스템의 원조

'015B'라는 그룹의 뜻이 지금까지는 '무한궤도'의 또 다른 표현법으로, '무=0 / 한=1 / 궤도=5B(Orbit)'라고 알려져 왔으나, 당시 멤버인 조형곤의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 ID가 01orbit였다.

뛰어난 음악적인 센스로 당대 신세대의 트렌드를 대변함과 동시에 당시 철저한 스튜디오와 라이브 세션이라는 국내 대중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슬로 랩(Slow Rap), 하우스(House),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등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장르의 음악을 계속하여 새롭게 시도한 영민한 팀이었다.

또한 소녀 취향의 가사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앞세운 발라드, 한 편의 동화책을 읽는 듯한 서정적인 현악 연주곡 혹은 사회 비판적 가사를 필두로 메탈 사운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보인 그룹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객원 보컬 시스템을 도입해 각 곡의 특성에 어울리는 다른 가수들을 기용해 주목을 받았다.

얼굴 모르는 가수들의 이 '불친절한' 가창(歌唱)은 수용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했고, 차곡차곡 그룹의 신선함을 어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청량제로 작용했다.

015B의 객원보컬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 가수로는 윤종신·김태우·김돈규·조성민·이장우·버벌진트·조유진·보니·비스윗 등이 있다. 그리고 신해철·이승환·유희열 ·박정현·다이나믹 듀오·호란·요조·김형중·포미닛·용준형 등도 015B 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015B를 발표한다.

신해철·윤종신과 정석원의 서울대 동문 최기식이 객원 보컬로 참여했고, 윤종신이 부른 '텅 빈 거리에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실연당한 모든 이들의 송가(頌歌)가 됐다.

데뷔곡이자 출세곡 '텅 빈 거리에서'로 '015B'의 페르소나가 된 윤종신이 최근 제작하고 있는 '월간 윤종신' 역시 다양한 보컬들이 부르는 노래를 선보이는데 이것도 본질은 015B가 시도했던 객원 보컬 시스템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이 메인 보컬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다소 낯선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서 머지않아 토이(TOY) 같은 프로듀서 중심의 그룹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냈다.

1집의 놀라운 상업적 성공 후 이듬해 다양한 시도와 참신함, 정석원 특유의 감수성 등으로 무장한 2집 'Second Episode'를 발표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다.

팝, 발라드는 물론 힙합, 하우스 등 당시 유행하는 신종 음악 장르들을 재빠르게 도입해 당대 젊은 층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마치 미국·영국 같은 팝 종주국의 음악과 거의 동시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0곡의 수록곡 중 '이젠 안녕' '친구와 연인'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H에게'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대중적 위상을 높여간다.

■밀리언셀러 음악의 신화 영원하리

1·2집의 성공으로 이전과 달리 프로 뮤지션의 자각을 가지고 제작한 3집 'The Third Wave'(1992)는 마침내 100만 장 판매라는 밀리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둔 1집 앨범.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015B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겸비한 실력파 뮤지션의 반열에 당당히 자리하게 된다.

타이틀곡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가장 큰 히트를 쳤고 트렌디하면서도 스테디한 연애 스케치로 등극했다.

이 곡은 국내에서 일렉트로닉 하우스의 성공 사례를 남기며 이후 많은 뮤지션이 이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암묵적 혹은 명시적으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와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 가요사의 흐름을 바꾼 명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015B는 미디어 매체의 펀치력을 외면하며, 1·2집에서 쌓아 둔 내공을 토대로 3집에서 꽃을 피웠기에 대중들은 더욱 환호했다.

3집은 4집 'The Fourth Movement'(1993)의 100만 장 도달을 향하는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타이틀곡 '新 인류의 사랑'은 객원 보컬인 김돈규만이 TV에 출연해,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의 기염을 토하고 골든컵을 수상한다. 해당 가수들이 한 번도 출연하지 않고 5주 연속 1위의 골든컵 수상은 가요 프로그램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듬해 발매된 5집 'Big 5' 역시 실험적이면서도 완숙한 음악 작법을 보여주며 국내 가요계에 리메이크 열풍을 불러온다.

지금까지도 조용필의 거대 히트곡인 '단발머리'와 나미의 '슬픈 인연'의 리메이크는 '015B'가 추구하는 음악적인 색깔을 그대로 살린 리메이크작의 완성된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015B는 3집부터 세 장 연속 100만 장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다. 2년 후 015B의 인더스트리얼(Industrial)적인 음악적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앨범, 6집 'The Sixth Sense'(1996)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음악적인 완성도와는 달리 대중적인 성공은 멀었다.

6집의 실험적인 음악은 30만 장 미만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당시 015B가 차지하는 위상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다. 대중성이라는 잣대와 전 소속사인 대영AV를 떠나 발매한 이유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앨범 판매량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그러나 단편영화를 연상케 하는 뮤직 비디오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21세기 모노리스'를 필두로 한 6집은 015B가 가장 독특하고 창조적인 면에 중점을 둔 역작이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돌연 해체를 선언해 많은 팬의 아쉬움을 샀다. 무려 10년의 공백기 이후 2006년 5월, 10년 만의 컴백 공연 'Final Fantasy'로 부활한 015B는 정규 7집 'Lucky 7'(2006) 발매에 앞서 스페셜 앨범 'Final Fantasy re-make'(2006) 한정판 1만 매를 의욕적으로 발매해 전량 소진되는 저력을 과시한다.

20세기 말 최고의 스타였던 그들은 21세기 들어 그렇게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이후 'Cluster Vol.1'(2007), '20th Century Boy'(2011) 등 몇 장의 디지털 싱글 등을 냈지만 성과는 예전 같지 않았다.

대한민국 음악계 경향의 선두에 위치하며 트렌드를 창출해 내던 무소불위의 '015B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린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사차불후(死且不朽)이리라.

최성철·페이퍼 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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