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벚꽃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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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벚꽃 그늘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속울음을 토하는 사람이 있을까. 흩날리는 하얀 꽃잎이 덧없는 삶으로 느껴질까. 꽃이 지더라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 우리의 성정은 자연의 이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경향을 지닌다. 밝고 고운 벚꽃에 깃든 미의식은 슬픔이나 비애가 아니라 환희와 우아한 멋일 가능성이 크다. 봄의 활력과 한 해의 상승하는 기운을 알기에 낙화를 뒤로하고 신록으로 눈길을 옮긴다.

아직 이팝나무의 꽃이 필 시기는 아니다. 이밥(쌀밥)을 닮은 이 꽃은 우리에게 풍요를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벚꽃도 처음 쌀밥을 연상하게 했다. 밥이 음식을 대표하듯이 벚꽃은 꽃 중의 꽃이었다. 피고 지는 과정에서 인생의 애환을 구가하고 꽃의 다양성을 통해 섬세한 문화적 의미를 부가하였다. 그 의미의 확장은 사무라이, 여성, 게이샤 등과 같은 사람을 비유하기도 하고 자기표현의 여러 방식이나 광기와 죽음과 환생을 뜻하기도 했다. 이처럼 벚꽃이 개인과 집단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는다. 하지만 오누키 에미코가 지적하듯이 메이지 이후 벚꽃은 문화적 내셔널리즘의 중요한 상징으로 등극하게 된다. 무사도와 선불교와 신도가 표상으로 삼은 꽃도 사쿠라이다. 모두 '벚꽃처럼 질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벚꽃 지는 것은 새잎 나는 과정
슬픔·비애 아니라 환희·우아
생명을 예찬하는 신명의 미학


거룩한 전쟁이라는 뜻을 가진 성전(聖戰)이 일본에 등장한 것은 전국시대이다. 사무라이 정신의 기저에는 불교의 공사상이 깔려 있다. 검선일여(劍禪一如)를 내세운 선승들이 군국주의 전장으로 청년들을 내몰게 된다. 대동아 성전의 아이콘이 된 것은 어김없이 벚꽃이다. 1944년 10월 31일 <아사히신문>은 필리핀 레이테만 해전을 두고 '가미카제 대원, 투혼을 보이고 신의 독수리는 자폭하여 벚꽃으로 진다'라고 보도한다. 이해 11월 30일 조선인 출신의 마쓰이 오장도 전사하자 <매일신보>는 사설을 통해 '마쓰이 오장을 따르자'라고 쓴다. 미당 서정주의 시 '마쓰이 오장 송가'가 이 신문에 게재된 것은 12월 9일이다. 이 시의 한 구절은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소리 있어 벌이는 고흔 꽃처럼/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고흔 꽃'의 이미지가 벚꽃임을 알기 어렵지 않다.

벚꽃처럼 떨어져 죽은 것으로 알려진 마쓰이 히데오(조선명 인재웅)는 포로가 되었다. 1946년 1월 10일 미군의 군함을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와 가족과 재회한다.(이향철 교수의 '카미카제 특공대와 한국인 대원' 참조) 지금껏 알려진 조선인 특공대원 18명 가운데 유일하다. 새털같이 가볍게 던진 목숨을 구사일생으로 구한 경우다. 오누키 에미코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남긴 글을 분석하고 이들과 연관된 군국주의 미의식을 두 권의 책을 통해(<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와 <죽으라면 죽으리라>로 번역되어 있음) 해부하였다. 풍요와 놀이의 대상이던 벚꽃이 어떻게 전쟁과 죽음을 미화하는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었는지를 검증하였다. 그와 달리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는 일본의 선불교가 살육의 무기가 되는 과정을 고찰한 바 있다.(<전쟁과 선>, <불교 파시즘>을 보라) 칼을 휘두르는 것이 깨달음이 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보살행이 되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쿠라 꽃잎이 오인된 상징으로 흩날린다.

행동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때가 있다. 상징이 자연화된 경우이다.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상징을 통하여 정치를 미화한다. 이래서 순수한 충성과 헌신이 가공된 상징에 이끌린 맹목의 행위가 된다. 우리에게 벚꽃이 지는 것은 새잎이 나는 과정과 겹쳐진다. 지는 꽃잎을 눈꽃 또는 꽃비에 비유하는 긍정의 에너지는 죽음을 찬양하는 무의 미학이 아니며 생명을 예찬하는 신명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진정 벚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생명의 우아한 멋을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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