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업 100년 프로젝트] 7. 대한엔드레스휄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제지용 펠트(두툼한 부직포) 제작 국내 독보적 강소기업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를 자랑하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 대한엔드레스휄트의 조정교 대표가 회사 조직도를 보며 직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직원 41년, 전무 40년, 이사 36년." 한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근속 연수다.

110여 명 전체 직원의 평균 나이가 50대 초반이고, 평균 근속 연수가 25년 정도다. 임직원이 마치 한 가족처럼 지낸다. 이름도 어려운, 대한엔드레스휄트 이야기다.

1945년 창업주 공장 인수
15년 뒤 펠트 국내시장 장악 
자율경영 직원들 똘똘 뭉쳐
2대 회장 사고 때 위기 극복
수직계열화와 특화된 기술
30개국 수출 글로벌화 '우뚝'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대한엔드레스휄트. 제지 공정에 사용되는 엔드레스펠트를 주로 생산한다.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국내 1위 업체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기도 하다. 펠트(felt)는 두툼한 부직포를 말하는데, 최근에 주로 폴리에스테르로 만든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종이 죽을 압착할 때 수분을 짜내는 역할을 한다. 엔드레스는 양끝이 붙었다는 뜻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한 기업에서 특히, 부침이 심한 중소기업에서 30~40년을 근무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조정교 대표는 "아버지와 아들, 누나와 동생, 엄마와 딸 등 실제 가족이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회사를 내 가정처럼 여겨서 가능한 일로, 고마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런 가족 같은 사풍은 회사 최대 위기에서 빛났다. 1994년 김상열 선대 회장이 사고를 당하자 금융권이 개인 회사라는 이유로 부도 처리했다. 전 사원이 금융권을 찾아가 설득 작업을 펼쳤고, 주말 내내 일을 하면서 납품 기일을 맞추었다. 결국 1994년 회사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이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선대 김 회장의 직원 사랑도 유별났다. 한 번도 직원 월급을 늦게 준 적이 없다. 거래처에 돈을 줄 때도 먼저 전화를 해서 받아가라고 할 정도였다.선대 회장의 부인인 조 대표는 "선대 회장은 직원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월급날이 휴일이면 하루 전에 월급을 줬다"고 전했다.

1994년 회사 경영에 나선 조 대표는 자율 경영을 제시했고, 이 전략은 주효했다. 또 조 대표는 휴게실 설치, 식당 리모델링 등 직원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 조 대표는 "부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가 회사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낫다. 또 자율 경영 때문에 노조 파업을 물론이고 마찰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1990년대 후반 해외 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위해 합작을 제안했을 때와 최근 인건비 상승으로 동종 업계 공장이 해외로 이전했을 때도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대신 최신 기계를 들여와 숙련된 인력을 활용해 제품의 질을 높였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2008년 캔바스 직조 기계와 2009년 엔드레스펠트 짜깁기 기계를 전격 도입했다.

"회사를 키워서 대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가 생명력을 갖고 100년 이상 이어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이 회사를 최고로 쳐야 하고, 시장에서 팔리는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

3대 경영자인 김재욱 총괄본부장도 복지와 제품의 수직 계열화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다.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을 겁니다. 펠트 분야에서 이미 상당히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펠트는 공기청정기, 정수기, 폐수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제품입니다. 제품의 질을 높이고 사용처를 다양화해서 비행기와 우주선에도 우리 회사 제품을 납품할 겁니다."

한편, 대한엔드레스휄트는 공식적으로 올해 창립 57년을 맞는다. 대한엔드레스휄트가 펠트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국내 시장을 장악한 1960년을 창립 첫해로 잡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창업주가 1945년 광복 때 일본 자본가에게 공장을 인수해 1949년 서울로 공장을 이전했다. 창업주는 전쟁이 나자 1950년 부산 전포동으로 공장을 옮겼다. 당시엔 모포를 만들어 내수용으로 판매했다. 조 대표는 "시아버지인 창업주가 공장을 인수한 때부터 치면 창립 72년쯤 된다"고 말했다.

1974년 공장이 현재 덕포동으로 이전하면서 선대 김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일본에서 기술 고문을 영입하고 인재 양성에 힘써 다양한 펠트 제품을 개발했다. 1986년부터 대만을 중심으로 일본 동남아 등에 수출을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회사 매출을 지탱한 것은 폐수에서 슬러지를 거르는 여과지인데 이때 개발된 제품이었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