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부산을 만든 '속살'과 '굳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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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속살을 품은 영주동 산복도로 공사 현장 모습.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얼굴 대신 '속살'과 '굳은살'을 책장에 담았다. 한 장 한 장, 부산의 깊은 속을 드러내 기록한 지역책이 잇따라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

따끈따끈한 신간 <산복도로 이바구>(인디페이퍼)는 부산 여행서지만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등 부산의 얼굴격인 대표 관광지는 쏙 빠져 있다. 대신 증산과 초량이바구길,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등 부산의 원도심과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한 장소들이 소개된다.

산복도로 이바구

가장 부산다운
공간 산복도로
여행해설사로 1년 동안
누빈 체험, 글로 묶어내

저자 손민수 씨는 산복도로의 매력에 빠져 부산 최초로 산복도로·원도심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는 일명 '이바구스트(스토리텔러)'. 피란민들의 애환과 그리움, 고단한 삶이 녹아 있는 산복도로 골목길이야말로 가장 부산다움을 간직한 장소라는 그의 믿음이 책장 속에 오롯이 담겼다.

책은 여행서라기보단 에세이에 가깝다. 부산역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생들과 함께 168계단을 오르고, 여행전문기자와 함께 답사길에 나선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18곳의 장소들이 소개되면서 부산의 속살도 한 꺼풀씩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가 여행해설사로 구석구석 누비며 몸소 알게 된 이바구('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들을 1년 동안 알차게 글로 옮겼다.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해진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외국에도 널리 알려진 '감천문화마을'도 등장하는데, 단순히 구경꾼으로서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마을의 그늘이 담겨 있다. 손 씨는 "자유 여행자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부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깡깡이마을…

근현대사의 압축
영도 대평동 일대
형성 배경부터 현재 모습
100년 역사, 책으로 담아

'깡깡이마을은 부산의 굳은살이다.' 문호성 소설가의 말처럼 영도 대평동 깡깡이마을은 압축적 근현대사의 굴곡을 품은 또 다른 '부산다운' 공간이다. 최근 출간된 <깡깡이마을 100년의 울림>(호밀밭) 첫 번째 시리즈인 '역사편'은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마을의 형성 배경부터 최초의 근대식 조선의 시작, 깡깡이아지매들의 억척스러운 삶, 문화·예술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오늘날 마을의 모습까지 두루 담고 있다. 선박을 수리하기 위해 아지매들이 배 바닥을 망치로 두드릴 때 나던 '깡깡' 소리에서 유래한 마을의 이름. 고(故) 최민식 사진가가 촬영한 책 표지 사진은 마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1887년 지금의 대평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의 1926년 당시 모습. 호밀밭 제공
2015년부터 마을 재생을 맡고 있는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은 지난해 반년 넘게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사료를 조사해 100년의 역사를 한 권으로 녹여냈다. 역사서라기엔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고, 주민의 시 등 마을신문에 실린 글들도 눈길을 끈다. 조선수리업, 원양어업, 수산업 등 시대의 흐름과 함께 부산 경제를 이끈 마을의 '산업편',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생활편'까지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사업단에서 학술감독으로 활동하며 집필을 맡은 호밀밭 장현정 대표는 "마을을 요란하게 알리기보단 주민들이 주인공이자 첫 번째 독자란 생각으로 책을 펴냈는데, 주민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출판 수익금은 전액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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