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통신사, 이젠 '한·일우호사'로
/김현중 건양대 교수
지난달 18일 밤 필자의 몸은 색색의 야경이 멋진 부산항대교 밑을 지나는 부관훼리에 실려 있었다. 배 안에는 '통(通)'이라고 쓰인 검은색 셔츠를 입은 젊은 청년들이 많이 보였고 이들의 표정은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필자도 부산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간 것이 오랜만이라 설레는 마음에 일본 맥주와 한국 맥주를 번갈아 맛보며 배의 운항 위치도를 살폈다.
필자는 8월 19일 오후에 시모노세키에서 있었던 조선통신사 재현행사에 일반 참가자로 참가했다. 백종헌(부산시의회 의장) 정사(正使)의 뒤를 따라 청도기(淸道旗) 복장을 하고 국서를 든 대열의 길을 여는 것이 임무다. 가볍지 않은 긴 막대의 깃발을 앞에 든 채 1㎞ 이상 행진했는데 36도의 뜨거운 날씨였지만 잘 버텼다. 마침 시모노세키 바칸(馬關/시모노세키의 옛 지명) 마쓰리도 같이 열리고 있어 구경 나온 많은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특히 모녀로 보이는 두 일본인은 '우리는 하나예요' '미래를 위해 함께 가요'라고 한글로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해 우리 일행의 눈길을 잡았다.
부산문화재단에서 파견한 120여 명의 통신사 행렬 참가자들은 410년 전의 통신사와 다름없는 복장과 자세를 보여 주며 시모노세키와 이와쿠니 등지에서 참가한 일본 참가자들과 필담을 나누며 교류도 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되게 하려고 4년째 민간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은 매년 부산과 쓰시마, 시모노세키 그리고 시즈오카에서 행사하고 있는데 전과 달리 부산지역에서만 참가한다고 한다. 통신사의 출발이 부산이었지만 당시 한양을 떠나 충주와 상주, 밀양 등지를 거쳤으니 전국적인 관심과 다양한 시민단체 등의 참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통신사와 연관된 지자체, 민간단체가 함께 현지연락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통신사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는 재일본 한국 민단과 유학생 등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적극 참여하여 교류하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날 부산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행사의 준비와 진행은 완벽에 가까웠다.
필자는 2003년 당시 히로시마 체류 시 히로시마현 구레시 시모가마가리에서 있었던 조선통신사 재현행사에서 정사 역을 맡아 본 경험이 있다.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당시 사진을 잘 모시고 있다. 그때 행사를 마치고 우호 교류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산림청에 부탁해서 공수해 온 무궁화 묘목 100여 그루를 시모가마가리 쇼토엔 조선통신사 테마 공원에 심은 바 있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 무궁화가 얼마나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하다. 시모가마가리는 세토내해의 싱싱한 생선과 꿩 등으로 국 셋, 요리 15가지의 산해진미 요리로 유명한 고치소이치관이 있었던 곳이다.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통신사는 1607년(선조 40년) 여우길 정사 등 467명으로 시작되어 1811년(순조 11년)까지 204년간 12회 지속되었다. 이들은 대륙의 최신 문물과, 시문, 서화 등을 일본에 전해 주었다. 당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일본은 신(믿음)을 교환하는 통신의 나라는 조선과 유구(오키나와), 무역을 위한 통상의 나라는 중국과 네덜란드로 정하고 교류하였다. 통신사가 끊긴 지 2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조선통신사 재현행사 등을 통해 한·일 간의 우호와 친선교류의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이제 이를 한·일우호사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통신사가 오갔던 곳만이 아닌 다른 곳으로 범위도 넓히고,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래에 두 나라가 상생할 수 있는 분야로 확대해 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