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칼리굴라-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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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

칼리굴라는 네로와 더불어 로마 역사상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로마 제국을 창시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 아그리피나였고, 아버지는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조카이자 명망 높은 장군이었던 게르마니쿠스였다. 그의 이름은 원래 가이우스지만, 아버지가 게르마니아에서 전쟁을 치를 당시 군인들은 그를 칼리굴라(작은 군화라는 뜻)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유년시절을 부모와 함께 전장에서 보냈던 그는 7살 때 아버지가 안티오크에서 죽자 가족과 함께 로마로 돌아온다. 티베리우스는 이후 아그리피나와 심한 갈등을 겪지만, 자신의 직계가 절멸되자 어쩔 수 없이 가문의 유일한 혈손인 칼리굴라를 황제로 지명하게 된다.

로마의 미치광이 폭군 칼리굴라
공화정 종말 고하는 조종 울려
그 칼리굴라만큼 위험한 트럼프…

칼리굴라는 37년에서 41년까지 겨우 4년간 통치했을 뿐이지만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잔혹하고 가학적이며 극단적인 과시욕에다 변덕스러운 성적 도착자라는 수치스러운 오명을 후세에 남겼다. 한마디로 미치광이 폭군이라는 것이다. 그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아내와 강제로 동침한 뒤 그것을 자랑스레 떠벌렸으며, 단지 재미 삼아 사람들을 죽이곤 했다고까지 전해 온다. 그는 또한 로마 인근 네미 호수에 거의 그 호수 크기만 한 극히 호화로운 배 두 척을 만들게 했는데, 이는 단지 사치스러운 만찬 모임을 통해 스스로의 권력과 재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귀족과 부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칼리굴라의 자기 과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로마는 물론 밀레투스나 예루살렘 등 다른 속주 곳곳에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사원을 짓도록 하였다. 그는 또한 아폴로나 헤라클레스 같은 그리스-로마 신들의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나오기도 했으며, 공식문서에 스스로를 유피테르라고 서명하기까지 했다. 그는 심지어 신전들에 안치된 신상(神像)의 머리를 자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라고까지 명하였다. 그가 스스로 네오스 헬리오스(새로운 태양)로 불리기를 원했다는 전언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을 이집트의 태양신 '라' 혹은 '아몬'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도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기겠다는 기상천외의 선포를 했던 것도 자신이 곧 파라오라는 자기도취적 심리에 의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끝없는 기행과 변덕에 질린 원로원과 근위대가 그를 암살함으로써 짧았지만 극단적이었던 그의 치세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칼리굴라가 로마에 남긴 가장 나쁜 유산은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어느 정도로 휘두를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제정 초기만 하더라도 비록 정체(政體)는 원수정으로 바뀌었지만,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는 공화정 시대의 정치 전통과 윤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칼리굴라는 일인의 제왕적 권력이 거의 무한대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지극히 나쁜 선례를 남겼다. 곧이어 네로라는 폭군이 등장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윤리란 한번 무너지고 타락하면 되돌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칼리굴라는 로마공화국이 이제 완전히 종말을 고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을 울린 인물이었다.

칼리굴라를 보면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다. 둘은 무엇보다 쇼맨십의 귀재라는 점에서 아주 닮았다. 트럼프는 실제로 무려 10여 년간 인기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견습생)의 프로듀서이자 호스트였다. 그의 변덕스럽고 매우 자의적인 행동도 큰 문젯거리다. 그는 이제 겨우 1년여가 지난 짧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다수의 고위직을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갈아치웠을 뿐 아니라, 국익이란 이름하에 국가의 주요 정책 기조마저도 별다른 논의 없이 바꾸어 놓았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미국은 칼리굴라 시대와 유사하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도취적이고 자의적이며 변덕스러운 리더는 바로 그 때문에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칼리굴라만큼이나 위험하다. 그의 성격이 남북 협상에 큰 변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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