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과 몸] 8. 위빠사나
한 걸음 한 걸음, 찰나에 집중하는 힘
담마야나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걷기 명상인 행선을 하고 있다.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영어로 표현하자면, pain과 suffering으로 나눠집니다. 전자는 우리가 불가피하게 겪는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겨나는 영원한 이별이라든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비극을 이릅니다.
후자는 어떤 괴로움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해서 더 악화하는 경우입니다. 고통을 행복으로, 고통 아닌 것을 고통으로 착각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방치하면 종국에는 신체와 정신의 파멸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동남아 근본 불교에서 행하는 위빠사나 수행법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대상을 향한 우리의 주의가 지혜로우면 건전한 대상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주의가 어리석으면 불건전한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수행의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동남아 근본 불교의 명상 수행법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 관찰하며
걷는 것에 집중하는 행선 등 통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 배워
■지혜의 눈으로 관찰한다는 뜻
부산문화회관 인근 아파트 상가 3층에 자리한 담마야나선원. 수행자 10여 명이 느린 걸음으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오가고 있다. 워낙 천천히 걷는 걸음이라 선원 안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어느 곳에 도착하려는 목적지가 있는 보행이 아니라 발을 들고 내딛는 순간순간을 응시한다는 느낌을 주는 걸음걸이다.
어느 정도 시각이 지나자 방석을 끌어다 놓는 몇몇 수행자를 볼 수 있다. 그들은 그 위에 조용히 앉아 좌선에 들어간다. 허리를 꼿꼿이 펴는 것 외에는 각자 나름의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그 마음은 알 길이 없다.
위빠사나 명상에는 이처럼 걷는 행선(行禪)과 앉아서 하는 좌선(坐禪) 수행이 있다. 위빠사나는 '위'와 '빠사나'로 나눠 살펴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위'는 특별하게, '빠사나'는 봄이란 의미를 지닌다. '특별한 봄'으로 해석되는 위빠사나는 곧 지혜를 말한다. 무엇을 그냥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지혜의 눈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일반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보는 것을 무상하게 보고, 일반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보는 것을 고통으로 보고, 일반 사람들이 자아라고 보는 것을 무아로 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행복도 알고 보면 고통이며, 자아 역시 잘 살피면 사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행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러한 번뇌를 없애려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명상을 통해 호흡을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 따뜻함과 차가움, 강함과 약함을 지켜보며 파악하는 관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수행 명상의 본질은 현재라는 찰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음이 현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을 때 그걸 내려놓은 것이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일치
따라서 과거와 미래에 사는 것이 정신 불건강이고, 현재에 사는 것이 정신 건강인 셈이다. 현재에서 멀어진 만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조금 멀어지면 경증이고, 많이 멀어지면 중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명상 수행할 때 전문 수행 센터나 고요한 공간을 찾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관심이 외부로 향하는 조건들이 별로 없어서 현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선은 몸을 반듯이 세우는 게 중요하다. 허리와 목, 뇌로 이어지는 신경이 올바르게 서야 한다. 팔 모양이나 손 위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좌선을 들어가면서 자애의 소중함과 육체의 허상 등을 떠올린다. 긴장을 풀고, 몸의 힘을 뺀다. 그리고 호흡, 몸의 변화를 유심히 살핀다.
행선은 걷기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처 안에서 걸어서 왕복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자연 속에서도 가능하다. 손을 움직이면 집중이 안 되므로 양손을 잡는다. 머리는 똑바로 하고, 시선은 밑으로 향한다. 서 있을 때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자신의 몸을 관찰한다. 발뒤꿈치를 떼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바닥에 발을 디딜 댈까지 그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일치하면서 걷는다.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동작들이 이뤄져야 한다.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야 앞뒤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
행선과 좌선을 번갈아서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행선을 많이 하는 게 좋다. 초보자는 좌선할 때 자칫 졸거나 딴생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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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선하며 몸의 변화를 관찰하는 수행자들. 강선배 선임기자 ks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