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베토벤은 왜 음악의 성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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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호 고음악평론가

사람들은 종종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 부른다. '악성'이란 곧 '음악의 성인'이란 말이다. 그런데 음악의 성인이라니? 선뜻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성인'이라는 말은 원래 종교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삶을 살아간 사람을 높여 부를 때도 성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음악의 성인'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음악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베토벤의 삶에 대한 존경이자 그가 만든 음악작품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듣는 이의 인격과 영혼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모두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시련·역경 딛고 정신·영혼 고양
고전주의서 낭만주의 미학으로
문명은 달라도 음악의 힘은 오롯

그렇다면, 베토벤 음악의 어떤 점들이 정신의 고양과 영혼의 승화라는 특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베토벤의 초기 음악작품들은 고전주의 전통을 따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대선배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들처럼 조화와 절제, 그리고 균형이라는 고전주의 미학의 덕목들을 충실히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조화와 절제, 균형의 미적 가치들만으로는 음악적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이 세 가지 미덕을 갖춘 인격자들, 소위 도덕군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가끔 만날 수 있지만 그들을 두고 성인이라고는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 가지 덕목은 어떤 사람을 성인이라 부르는 데 필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성인으로 불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한다. 성인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그 위에 어떤 성스럽고도 거룩한 혹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한 특성의 기미는 베토벤의 중-후기 작품에 와서야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59번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는 그러한 특성이 비로소 발아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미적 가치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낭만주의의 미적 가치들로 커다란 전환을 보이게 된다. 이 작품 이후에 여러 종류의 소나타들이나 9번 교향곡 '합창' 같은 훌륭한 작품들이 이어지고, 마침내 음악의 성인으로까지 불리게 한 그의 최후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 작품들은 바로 그가 만년에 작곡한 6개의 현악사중주들(작품 127, 129, 130, 131, 133, 135)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위대한 문인이었던 로맹 롤랑이 베토벤을 모델로 해서 쓴 장편소설 <장 크리스토프>는 19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 '불타는 가시덤불'이란 제목이 달린 제10장의 내용은, 만년에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이 어떻게 처절한 정신적 투쟁을 거쳐서 마침내 영혼이 승화되고 또한 달관에 이르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 만년의 현악사중주들은 서양음악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다. 우리는 바흐의 작품들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를 악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음악의 형이상학을 표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토벤은 서양음악사에서 악성이라 불리는 유일한 사람인 셈이다.

공자는 "인격의 최후의 완성은 음악에 의해 이루진다"고 하였다. 유교의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가 도덕적 실천이 아닌 음악에 의해 인격이 완성된다고 말하다니? 이 또한 '악성'이라는 말처럼 의아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의아하게 느껴지는 말을 우리는 인도의 요가철학에서도 들을 수 있다. "요가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나다-요가(Nada-Yoga)는 음악적 수행을 통해서 정신적 수양과 해탈을 추구하는 요가이다."

만년의 베토벤 현악사중주들과 공자의 잠언과 인도의 나다-요가는 서로 다른 문명들로부터 탄생되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표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격과 정신의 초월적인 완성은 궁극적으로는 음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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