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소득주도 성장' 자본주의의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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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올 한 해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나 올렸다가 고용 위기를 자초했고 덩달아 집값도 들썩이니 정부로선 그런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판의 출처는 다양하다. 가장 먼저 보수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저임금이 가져온 처참한 경제 현실을 대서특필하며 군불을 지폈다. 이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비판의 대열에 가세했고, 심지어는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보수 정권 9년 신자유주의 편승
사회 양극화 등 참담한 성적표

시장 실패 보완하는 정부 개입은
자본주의 경제사가 주는 교훈

보수세력, 엉뚱한 '국민성장론'
역사가 버린 패 다시 줍는 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제이노믹스'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고 어떻게든 그걸 지켜내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분투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금의 위기가 일종의 성장통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의 양보다 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어떤 면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원래 의도했던 바의 정책 목표가 달성되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지켜내기 위한 이런저런 해명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론의 퇴장이 임박한 듯 보인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서 과연 소득주도 성장을 포함한 '제이노믹스'가 보수 언론과 정부 여당이 주장하듯 총체적 실패로 끝장난 정책이고 그래서 폐기의 수순을 밟는 것이 당연한지를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9년간 철저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해 기업과 시장이 주도하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각종 세제 혜택과 탈규제의 선물 폭탄이 기업에 경쟁적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장밋빛 청사진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연평균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달성하겠다던 '747공약'은 결국 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년 후인 2014년 1월 경제정책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이른바 '474공약'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껏 올려놓았던 기대 수준을 확 낮춰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수첩공주의 그 소박했던 꿈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보수 정권의 경제 성적표는 한마디로 '꽝'이었고 그 결과는 비정규직의 폭발적 증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증세만 있고 복지는 없어 정부만 배 불리는 고달픈 경제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그런 보수 집권 9년의 참담한 경제정책의 결과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시된 대안적 담론이다.

자본주의는 제1의 황금기를 지나면서부터 경기침체와 활황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기순환(business cycle)의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이상의 주기로 이어지던 경기순환은 1970년대 세계적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더욱 빨라졌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성장·저금리·저물가'로 경기침체가 만성화되어 나타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런 변화를 가져온 주범은 바로 지난 30여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패러다임이다. 시장과 기업에만 기댄 과도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은 이미 거덜 난 정책임이 드러났다. 시장이 실패했다면 그 대안은 정부의 개입으로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다. 굳이 자본주의 제2의 황금기를 이끌어낸 케인스의 경제이론을 되살리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시장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케인스가 주장했던 임금주도 성장의 또 다른 버전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기 위한 새로운 진자운동의 시작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보수 세력은 오늘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그들의 뼈아픈 실정으로부터 온 반작용이란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야심 차게 내놓은 '국민성장'의 개념은 그런 점에서 한국 보수의 문제의식 부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번짓수가 한참 틀린 주장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환상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결국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된 '시장'에 방점을 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연장해 가자는 것일 뿐이다. 정작 쓸모 없어 버린 패를 다시 주워 쓰자는 아둔한 발상은 도대체 어떤 자본주의 경제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진정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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