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형제복지원 담당 검사 김용원 변호사 "비상상고 반드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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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신참내기 검사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처음 만난 건 1987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울주군의 한 야산으로 지인과 꿩 사냥을 나갔던 김용원 변호사(당시 울산지청 검사)는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강제 노역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몽둥이는 물론 감시견까지 대동한 경비원들이 이들에게 주먹질과 해 댔고 욕설도 퍼부었다.

김 변호사는 즉각 10여 명의 경찰과 함께 부산 사상구 형제복지원을 급습했다. 당시 돈으로 30억 원에 달하는 정기예탁금 증서가 자칭 사회복지시설 원장이라는 사람의 금고에서 발견됐다. 그날 밤 울산지청 조사실에서 마주한 박인근 원장은 젊은 검사가 가소롭다는 듯이 "당신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검사장을 불러와라"고 했다.

울주군 야산서 강제노역 목격
당시 차장검사 등 윗선 압박에
박인근 원장 수사 번번이 좌절

"정부가 진상조사기구 구성해
숨어 사는 피해자들 찾아야"

김 변호사의 수사 시도는 보이지 않는 높다란 벽 앞에서 자꾸만 좌절됐다. 부산지검 차장검사로부터 '업무상 횡령은 공소장에서 빼라' '특수감금은 울주군 야산으로 한정하라' '수사 진행상황을 청와대로 직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산에 와 있는 동안 언론 보도가 나가지 않게 막으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당시 부산시장이 전 전 대통령에게 "박 원장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다. 박 원장 때문에 부산 거리가 깨끗해졌다"며 보석을 부탁한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결국 1심에선 징역 10년에 벌금 6억 8000만 원을 선고받은 박인근 원장은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 특수감금은 무죄,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2년 6개월을 받는 데 그쳤다.

지난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요청하면서 당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29년 만에 찾아왔다. 김 변호사는 "수사검사로서 감회가 남다르다"면서 "특수감금죄가 성립된다면 피해생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만든 내무부 훈령에 근거한 감금행위였으므로 박 원장 개인만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책임을 따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비상상고가 반드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모임에 가입된 사람은 300~400명 수준인데, 전국적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찾아보면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트라우마로 평생 숨어 살고 있는 이들을 보듬어 주려면 정부가 진상조사기구를 만들어 직접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법은 진상조사기구의 활동 근거가 된다.

김 변호사는 "특별법 제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설에 갇혔던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용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많이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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