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 실패는 뇌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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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아오면 우리 안의 자기계발 욕구가 꿈틀거리기 마련이다. K 씨도 남들처럼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다이어트, 독서, 어학공부, 여행 등의 여러 목표 중에 K 씨는 2019년엔 몸짱이 되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평소 숨쉬기 운동만 하는 K 씨의 운명은 십중팔구 이럴 것이다.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게으른 자신을 반성할 것이고, 여름이 오면 한때 몸짱이 되려 했다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추석 즈음엔 새해 결심 같은 걸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것이고, 크리스마스 무렵엔 2020년 새해 목표로 또 하나의 결심을 또 할 것이다. 아마 다들 비슷비슷할 것이다.

77% 새해 다짐 일주일만에 포기
뇌과학자 “말뿐인 결심, 당연하다”
뇌는 고민한 뒤 선택하는 것보다
하던 대로 하는 습관 의존해 진화

구체적 단계별 목표 따른 실천 등
뇌 저항 줄이는 새 습관 만들어야

말뿐인 새해 결심과 인류 생존

새해가 시작할 즈음엔 헬스장과 어학학원은 특수를 누리고, 자기계발서와 운동기구의 판매량은 급증한다. 물론 한두달 뒤면 매출은 평균으로 수렴된다. 담배 판매량은 반대다. 올 1월 담배 판매량은 2.5억 갑이었으나 4월엔 3억 갑이었다. 연초 이탈한 흡연자가 봄이 오면서 모두 원대복귀 한 것이다.

77% 가량의 사람들이 새해 다짐을 일주일여만에 포기하고, 오직 19%의 사람만이 이뤄낸다는 통계도 있다. 굳이 수치를따지지 않더라도 경험적으로 새해 결심이 사실은 ‘1월 혹은 일주일 결심’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말뿐인 새해 결심은 K 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고민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매체들이 이런 인간의 의지부족을 질책하는데, 뇌과학자들만이 우리를 위로한다. 말뿐인 결심이 자연스러운 거란다. K 씨가 나태해 보이는 것도 우리 뇌가 생존을 위해 변화에 저항하도록 진화한 결과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뇌 연구자로 잘 알려진 정재승 박사는 <열두 발자국>(2018)이라는 저서에서 인간 뇌의 작동 영역을 ‘목표지향 영역’과 ‘습관 영역’으로 나눴다. 목표지향 영역은 고민 뒤 선택하는 것으로, 새해 결심을 실천하는 것도 이 영역의 일이다. 습관 영역은 아무 고민 없이 하던 대로 하는 행동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문제는 뇌의 극단적인 에너지 비효율성이다. 전체 몸무게의 2%에 불과한 뇌는 음식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만일 인간이 뇌를 더 많이 활용하는 종(種)이었다면, 먹을 것이 궁했던 먼 옛날 이미 인류는 에너지 부족으로 절멸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뇌는 목표지향 영역의 사용을 자제하고 하던대로 사는 습관 영역에 의존하도록 진화했다. 그 덕에 뇌를 덜 쓰고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정재승 박사는 “베스킨라빈스 30여 개의 아이스크림 메뉴 중 8개가 전체 메뉴의 80%를 넘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골라먹지 않고 늘 먹던 대로 먹는다”며 변화를 거부하는 습관 영역의 강렬함을 설명한다.

이런 뇌를 타고났는데, K 씨가 어찌 진화의 결론을 역행하며 몸짱이 되겠는가. 운동을 시도하면 그의 뇌는 살던 대로 살라며 스트레스를 뿜어내며 저항할 것이다. 헬스 운동 중 가장 어려운 게 집에서 헬스장까지 가는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지만으론 부족

그럼에도 19%의 사람은 같은 사피엔스이지만 새해 결심을 이룬다고 한다. 정재승 박사는 절박하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폐암 선고를 받으면 대부분 금연하듯, 운동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믿으면 K 씨도 몸짱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다만, 불행히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자기학대적인 상상을 잘 못한다.

우회적으로 뇌의 저항을 줄이고 최종적으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물론 쉽지 않다.

UCLA 의대 교수 겸 UCLA 디지털행동센터 소장인 션 영은 행동과학에 기초해 7단계 방법(표물)을 제시한다. 목표 설정에서부터 모든 과정에 걸쳐 나름 과학적인 분석과 대응방법을 제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 분석에 따르면 K 씨는 목표 자체가 잘못됐다. 몸짱 만들기는 최종 목표이고, 좀더 세부적으로 월별 목표를 정하고, 근본적으론 주 4회 헬스 혹은 필라테스 같은 구체적인 단계별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가 구체적이어도 K 씨의 뇌는 격하게 저항하며 어떻게든 헬스장 등에 안갈 핑계를 찾는다. 그러니 가장 가깝거나 편안한 헬스장의 회원이 돼 일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운동 모습을 꾸준히 SNS와 헬스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SNS 팔로워와 커뮤니티 회원들의 격려 또는 감시가 포기를 어렵게 한다. 보는 이들이 있으면 인간은 뭐든 더 열심히 한다.

더 중요한 건 운동사진을 공유하다 보면 스스로 운동을 즐기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뇌 해킹’이다. 싫은 행동을 하면서 좋아할 때의 반응을 계속 보이면 뇌도 착각한다. 션 영이 “행동이 정신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렇게 2~3달을 지내다 보면 운동이 습관이 될 수 있을 법도 하다.

션 영은 “강한 사람을 본받아라, 열정을 키워라 등 사람을 바꾸려 하는데 사람의 핵심 성격은 쉽게 안 변한다”며 “과학과 적합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맞는 말 같은데 이 역시 쉽지는 않다는 게 흠이다. 결국 뇌 안을 들여다 봐도 새해 결심을 이루는 건 어렵다. 다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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