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 15년 만에 잡았나 했는데, 진범 아닐 수도…
2002년 당시 강서구 서낙동강변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사체. 부산경찰청 제공
2002년 5월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다음 날 한 남성이 죽은 여성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했다. 여성의 시체는 열흘 만에 마대자루에 담긴 채 바다에서 떠올랐다. 남성의 지인은 남성이 마대자루를 차 트렁크로 옮겼다고 말했다. 당연히 남성은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혔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다는 직접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남성은 주운 가방 속에서 통장을 꺼내 돈을 인출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범인은 과연 그 남성일까.
대법원이 위 살인사건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표’를 다시 제기했다. 1·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성에 대해 “살인 증거가 부족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한 것이다. 살인에 대한 직접증거가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한 1·2심의 법리가 부족하다고 봤다.
부산 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
1·2심 ‘무기징역’ 양 모 씨
대법 “직접증거 없다” 파기 환송
돈 인출·시신유기 정황 진술뿐
“제3자 진범 가능성 살펴보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조희대)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양 모(48) 씨의 상고심에서 “제3자가 진범일 가능성이 있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양 씨는 2002년 5월 A(당시 22세) 씨를 협박해 빼앗은 통장에서 예금 296만 원을 인출하고, 칼로 수십 회 찔러 A 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은 당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초기 A 씨의 지인인 B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특수강도 전력이 있는 B 씨가 사건 당시 A 씨와 통화하고 만난 사실을 감추고 허위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양 씨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사건 다음 날 은행에서 A 씨의 통장으로 예금을 인출한 CCTV 영상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이튿날 다른 두 여성이 다른 은행에서 A 씨의 적금을 해지하는 영상도 입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미제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경찰 재수사와 시민 제보로 해결의 길이 열렸다. 경찰은 2016년 두 여성을 체포했고, 이들을 통해 양 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검거에 성공했다. 이후 경찰은 양 씨의 지인으로부터 사건 무렵 물컹한 물건이 담긴 마대자루를 양 씨와 함께 차 트렁크로 옮겼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 씨는 “A 씨 가방을 주워 안에 든 통장의 돈을 인출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진실은 재판으로 가려지게 됐다. 재판에서는 간접증거인 진술만으로 살해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2심은 “양 씨를 범인으로 볼 여러 유력한 간접증거들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제3자가 진범일 가능성을 더 면밀히 살펴보라”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간접증거와 간접사실만으로 살인 범행이 증명됐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여러 의심스러운 사항을 면밀하게 심리한 후 유죄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