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은 해양수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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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한국해양대 해사글로벌학부 교수

부산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만도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18년 부산항은 컨테이너 처리량 2167여 만 TEU로 세계 5-6위권 항만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항의 지위에 걸맞게 부산시는 ‘해양수도’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해양수도특별법까지 제정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2025년이면 부산항은 개항 15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부산이 항구도시라는 것 이외에 해양수도라고 할 만한 상징조형물이나, 시민들이 바다를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친수공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물론 해운대와 광안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수욕장은 전국의 해안에 산재해 있어서 이것만으로 부산을 해양수도라 부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해양수도란 바다에 연해 있거나 항구를 기반으로 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해양수도는 명실공히 해양에 관한 정책, 경제, 문화, 생활이 한 나라의 중심을 이루는 해양도시이어야 할 것이다. 해양경제 측면에서 보면, 부산은 항만도시로서 국내 1위, 세계 5~6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해양수도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나 시민들의 생활 측면을 보면 딱히 언급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민들이 해양시와 소설을 창작하고, 소비하고, 해양 영화와 음악, 미술을 향유할 만한 소재 자체가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게다가 가볍게 가족들이나 애완동물과 바다를 즐기고, 보트를 탈만한 마리나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고, 역사성을 가진 보존선 한 척도 없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있어서 연간 200만 명 이상이 관람하고 있다지만, 전시물을 보면 부족한 면이 많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영국은 주요 항만마다 보존선이 있어, 과거 대영제국으로서의 세계를 지배했던 영광의 주역인 역사적인 선박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해양사상과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다. 런던(그리니치)에는 범선 커티샥호가, 포츠머스에는 넬슨 제독의 기함 빅토리아호와 최초의 장갑전함 워리어호가, 벨파스트에는 세계 최초의 스크류 장착 철선인 그레이트 브리튼호가 보존되어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주요 항만마다 해양박물관과 보존선을 두어 해항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요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도쿄와 요코하마는 해양수도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만하다. 도쿄는 1974년 선박과학관을 개관하고, 부속시설로 남극관측선인 소야호와 쓰가루해협 연락선인 요테마루를 보존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1965년 취역한 요테마루는 1988년까지 쓰가루해협의 연락선으로 활용된 뒤 퇴역해 선박과학관으로 이관, 전시선으로 보존되고 있다. 요코하마는 개항 100주년을 맞이하여 소규모 해양과학박물관을 개관한 이래, 1980년에는 범선 니폰마루을 도크에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고, 1988년에는 요코하마항구박물관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부산항은 해양수도라고 부를만한 어떠한 보존선이나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다. 다행히 북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시민들이 바다를 가까이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과 대형 마리나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역사성을 갖춘 보존선 한 척 갖추고 있지 않다면 해양수도로서의 부산의 명성에는 걸맞지 않을 것이다.

부산항은 1948년 최초의 수출무역선 앵도호의 출항항이었고, 1952년 최초의 태평양 횡단 상선인 고려호가 출항한 항구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일주 선박인 (옛)한바다호가 출항한 항구다. 앵도호와 고려호 등은 이제 해체되어 사진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옛)한바다호는 보존이냐 해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부산시에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보존선 한 척 갖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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