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근대문화역사길] 벚꽃 말고도 볼 곳 많아요
중원 로터리에서 바라본 진해우체국. 1912년에 러시아풍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현재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왼쪽 뒤로 제황산공원과 진해탑이 보인다.
중원 로터리에서 바라본 진해우체국. 1912년에 러시아풍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현재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왼쪽 뒤로 제황산공원과 진해탑이 보인다.
진해 하면 무엇보다 먼저 벚꽃이 떠오른다. 해군교육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해군의 도시, 군항이기도 하다. 진해의 이 모든 기억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비롯됐다. 일제는 러·일 전쟁 직후인 1910년부터 진해를 군항으로 개발, 당시 중편한들로 불리던 들판에 중원 로터리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북쪽에 북원, 남쪽에 남원 로터리를 두고 방사직교형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벚나무도 해군 근거지인 진해만 요항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처음 심었다. 그 당시 세워진 근대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도시 전체가 근대사 100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와 항일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역사교육의 산실, 진해의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는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투어를 떠나보자.
일제가 1910년 군항으로 개발했던 진해
도시 전체에 근대사 100년 흔적 고스란히
이순신 동상~제황산까지 3시간이면 충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우리나라 최초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은 북원 로터리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어 군항마을 거리와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를 거쳐 진해우체국, 제황산 공원까지 총 15곳의 근대문화 역사 자원을 잇는 코스다. 설명을 살펴보며 천천히 둘러봐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충무공 동상은 195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임진왜란 360년을 맞아 시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이충무공에 대한 문헌 자료와 그 자손의 골상 등을 참고해 만들었으며, 이는 수많은 충무공 동상과 영정의 표준이 되기도 했다.
동상 제막식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으나, 동상에 남아있던 그의 휘호는 지워지고 없다. 친일파 청산 실패와 뒤이은 분단, 3선 개헌, 4·19혁명 등 우리나라 현대사의 명암이 동상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이 충무공 동상은 올해로 57회째를 맞은 군항제의 기원이기도 하다. 1953년부터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서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이순신 장군 추모제를 거행하다 1963년부터 민·관·군의 화합을 다지기 위한 의미로 군항제로 확대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화공간 흑백
문화공간 흑백과 진해 군항마을 거리
충무공 이순신 동상에서 중원 로터리를 향해 10분 정도 걸어가면 진해의 문화 명소로 지금껏 자리매김하는 문화공간 흑백이 나온다. 근대역사로의 여행이 본격 시작되는 곳이다.
1912년 건립된 2층짜리 목조건물로 1960~1970년대 진해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음악감상실로 인기를 끌었다. 음악감상을 위한 대형 스피커와 반대쪽의 음향 반사판, 흑백의 오래된 테이블이 아직도 남아있다. 현재도 카페와 연주회장,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흑백을 지나 걸음을 옮기면 진해 군항마을 거리와 테마공원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육각집
진해 군항마을 거리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대변해 주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의 적산 가옥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중국풍의 3층 건물인 육각집, 일명 뾰족집과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포로 출신이 처음 개업한 중국음식점 원해루 등 오래된 목조건물이 유난히 눈에 띈다. 육각집은 당시 중원 로터리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한 랜드마크로 건설됐다고 한다. 3층으로 올라가는 내부계단과 창을 통해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답다.
원해루
군항마을 중심에는 테마공원과 1912년 지어진 목조건물을 리모델링한 군항마을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 군항마을 역사관은 진해 지역의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일러스트 엽서와 마그네틱 자석 등 기념품도 판매한다.
일본장옥 거리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 주택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식 장옥(長屋) 거리도 아직 남아있어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다. 지붕 하나에 여러 가구가 들어선 형태의 긴 목조건물이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는데, 여전히 가게와 주택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912년에 지어진 옛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관사에는 대중음식점이 들어서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다.
김구 선생 친필 시비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
진해에서 꼭 가봐야 할 곳 가운데 하나가 항일의 근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시비다.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진해를 방문해 해안경비대(현재 해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조국해방을 기뻐하면서 남긴 친필 시를 화강암에 새겨 만든 비석이다. 해군사관학교 입구인 남원로터리에 2.8m 높이로 서 있다.
비문은 이순신 장군의 ‘진중음’ 중 일부 구절로 “바다를 두고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을 두고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는구나”라는 내용이다.
친필 시비 옆에는 ‘대한민국 이십구년’이라는 김구 선생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서부터 비롯됐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동행한 김인숙 해설사는 “글자 중에 세로획이 많이 흔들린 부분이 보이는데 이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시절 총상을 입은 후유증”이라며 “이 때문에 김구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서체를 총알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구 선생의 시비는 당초 북원 로터리에 세워져 있었으나 이승만 대통령 취임 후 진해역과 인근 사찰 창고 등을 옮겨다니며 비석 윗부분이 깨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 깨진 부분을 붙이고, 멸실된 곳은 새로 새긴 흔적이 보인다. 이 시비는 4·19 혁명 후에야 뜻있는 시민들에 의해 남원로터리로 옮겨졌다.
제황산
진해우체국과 제황산
진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중원 로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진해우체국이다. 1912년에 세워진 삼각형 모양의 1층짜리 목조 건물로 국가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건물 양식은 러시아풍의 근대건축인데, 이는 이 지역에 일찍이 러시아 공사관이 자리잡고 있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중에서 가장 오래 됐으며, 현재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오르내림식 창문과 천정의 환기구 등이 눈길을 끈다.
진해우체국 뒤의 제황산은 마치 부엉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부엉이 산, 풍수적으로 임금이 태어날 명당이라는 뜻에서 제왕산으로 불렸다.
일본이 정기를 끊기 위해 산 정상부를 깍아내리고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을 세웠으나, 해방 후 이를 헐고 1967년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을 건립했다.
365개인 1년 계단을 오르거나, 모노레일을 이용해 올라갈 수 있다. 2층에는 진해시립박물관이 있고 8층 전망대에 오르면 진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어떻게 찾아가나
근대문화역사길의 중심은 중원 로터리다. 원형 광장에 서면 사방으로 대칭을 이루며 8거리가 이어진다. 중원 로터리를 중심으로 진해우체국과 군항마을 거리, 육각집, 제황산공원 등을 마음내키는 대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진해에 스민 근대사의 흔적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기투어와 수시투어로 나뉘어 운영되며, 모두 무료다. 정기투어는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30분과 오후 1시30분에 진행된다. 별도의 신청 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발장소인 해군의 집 관광안내소로 가면 된다.
8명 이상 단체는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수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희망일 3일 전까지 창원시청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창원시는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역사자원들을 둘러보는 군항문화탐방길 코스도 운영한다. 국내 유일의 영내 탐방 관광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해설사가 개인 차량에 동승해 영내를 둘러보고, 유적지에서는 차에서 내려 탐방하는 방식이다.
군항문화탐방은 군부대 안을 둘러보는 관계로 탐방 하루 전날 낮 12시까지 사전에 신청해야 한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