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현존 최대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사라지고 일제 잔재도 청산
'완월동' 사실상 폐쇄
부산 서구 완월동 전경. 부산일보DB
완월동 폐쇄는 전국 최초이자 현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넘어 왜곡된 근현대사를 바로잡는다는 ‘역사적 의미’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완월동은 일제에 의해 한반도에 처음 만들어진 최초의 ‘공창’이다. 우리 민족에겐 없던 철저하게 상업화된 시각에 성을 사고파는 개념이 시작된 곳이다.
부산 서구 완월동 내 성매매업소들은 구역 내에 일렬로 배치돼 있다. 업소들이 열을 맞춰 사각 구역 내 들어서 있는 모습은 여느 성매매 집결지와 사뭇 다른 형태다. 대부분의 성매매 집결지는 업소들이 빈공간을 찾아 자리잡으면서 미로처럼 구성돼 있는데, 완월동은 마치 성매매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역이 개발된 느낌을 준다.
1916년 일제가 ‘계획’한 공창
해방 후 미 군정하에 사창 변모
일제 만행 청산하는 중요 작업
실제로 완월동은 처음부터 성매매를 위해 조성된 ‘계획’ 구역이다. 일본은 풍기단속을 명목으로 1916년 부산 곳곳의 유곽을 한데 모아 현재 서구 충무동 성매매 집결지에 ‘공창’을 만들었다. 당시 항공사진을 비교해 봤을 때 집결지는 ‘블록’모양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은 현재와 지금도 다르지 않다.
2014년 발간된 부산연구원의 ‘완월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16년 매춘관리법을 발표해 조선 각지마다 다른 매춘관리법, 용어 등을 통일해 효율적으로 성병을 예방하고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관리, 통제했다. 유곽의 조성과정을 논문으로 쓴 양미숙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안락정이라는 최초의 유곽이 부산에 들어서면서 성매매 집결지 형태의 성매매가 시작됐는데 바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이라며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성매매라는 문화 자체도 완월동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퍼졌다”고 말했다. 성을 상업적 대상으로 보고 최대한 업소의 이윤을 보장하는 식의 근현대식 성매매 개념이 한반도에선 완월동에서 시작된 셈이다.
1910년대 서구 충무동 일대 미도리마치(綠町·녹정) 전경. 부산일보DB
일제 강점하에 싹이 튼 성에 대한 상업적 시각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건재했다. 1947년 미군정하에 공창제가 폐지됐지만 완월동은 다시 사창으로 모습을 바꾸어 미군을 상대로 운영됐다. (사)여성인권단체 살림 상담소 최수연 소장은 “당시 정부는 아예 여성들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이 여성들을 등록해 관리·통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성과 여성을 돈벌이로 본 것이다. 살림 보고서에 따르면 1979년 완월동에는 124개 업소에서 여성 1250명이 성병 진료병원에 등록돼 있었고, 미등록 여성 500여 명이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살림 등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는 “완월동이 일본이 만든 계획 성매매집결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본 잔재는 우리 삶 깊숙이 파고 들었다”며 “완월동 폐쇄는 부산지역 하나의 성매매 집결지가 없어진다는 것을 넘어 일제의 만행을 청산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