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9. 파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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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고픈 전 세계 ‘텀블위드’의 성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앞의 작은 광장과 실내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매우 낡아 보이는 서점 정면 모습과 서점 내부의 빨간 계단(위부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제공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앞의 작은 광장과 실내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매우 낡아 보이는 서점 정면 모습과 서점 내부의 빨간 계단(위부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제공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의 장 폴 광장에서 두블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모퉁이에 아주 작고 낡은 서점이 하나 보인다. 서점 옆의 생자크 거리를 따라가면 소르본대학이 나오니 이런 위치에 서점 하나 정도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서점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교 앞의 그저 그런 서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 서점’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이 파리 대학생뿐만 아니라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찾는 관광명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4년 이곳을 ‘파리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명소 10선’ 중 4위에 올렸으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노트르담 성당 앞 장 폴 광장 근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 서점

2차 대전 참전 미군이 정착 후 열어

잘 곳 없는 작가에게 숙소 등 제공

‘휘트먼 부녀’ 대를 이어 서점 운영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대접’ 원칙 아래

지금도 텀블위드 보금자리로 인기

시 낭송 등 독서 활동 명소 자리매김


■텀블위드의 천국

1951년 아주 독특한 개성을 가진 미국인이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 센강 주변에 서점 하나를 열었다. 아주 작고 낡은 서점이었다. 이름은 ‘르 미스트랄’이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여러 지인에게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머지않아 르 미스트랄은 파리에서 문학의 중심지가 될 거야!”

르 미스트랄을 개점한 사람은 원래 미군 병사였던 조지 휘트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유럽에서 독일군과 싸운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는 미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파리에 눌러앉았다. 문화예술이 넘쳐나는 파리의 매혹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

휘트먼은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웃으며 이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작품을 쓰고 모임을 열거나, 휴식 공간이 필요한 작가라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서점 안쪽에는 이런 글을 써 붙이기도 했다. ‘사람으로 변장한 천사가 아니라면 어떤 낯선 이도 환영합니다.’ 세월이 흘러 서점이 유명해졌을 때 그는 ‘영혼에 상처를 입고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고 이 문구를 설명했다.

르 미스트랄은 당시 파리 문학계를 흔들던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에게 본부 같은 역할을 했다. 이곳을 오가거나 아예 숙소로 삼았던 작가는 앨런 긴스버그, 그레고리 코르소, 윌리엄 S 버로 등이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작가라면 이곳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서점 선반 사이는 물론 다락에 간이침대가 여러 개 설치돼 밤에 등을 누일 수 있었다.

휘트먼은 이런 작가를 ‘텀블위드’(회전초)라고 불렀다. 텀블위드는 미국 서부영화 등에 자주 나오는 풀이다. 황량한 시골 마을 길가에 뿌리박고 힘겹게 살다 가을이 되면 말라비틀어져 마치 둥근 공처럼 굴러다니는 잡초다.

르 미스트랄의 운영 방식은 입소문을 타고 파리 시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무일푼으로 여행하면서 하룻밤을 지낼 곳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파리 여행자에게 이곳은 마치 유토피아로 비쳤다. 그는 서점을 찾아온 텀블위드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곳은 말이죠! 서점으로 가장한 사회주의자의 유토피아랍니다.”

휘트먼은 1958년 어느 날 저녁 르 미스트랄에서 열린 독서 모임에 참가한 미국 소설가 제임스 존스를 만났다. 파리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존스를 프랑스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다른 여성도 참석했다. 1919년부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유명한 서점을 운영해 온 실비아 비치였다.

비치의 서점은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 세대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같은 유명 작가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 소설가였던 아일랜드 출신의 제임스 조이스를 후원하기도 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사람도 그녀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음란물 판정을 받아 판매 금지된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는 손쉽게 사거나 빌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파리 시민은 물론 여행객이 반드시 가봐야 할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탓에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그녀는 서점 문을 닫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독일군의 파리 점령 때 독일군 장교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찾아가 딱 한 권 남아 있던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비치가 거부하는 바람에 강제로 폐쇄당했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됐든 휘트먼과 비치는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렸다. 둘 다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동지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비치는 그날 휘트먼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휘트먼 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군요. 제가 가진 서점 이름을 휘트먼 씨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비치는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독서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이름을 휘트먼 씨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운영해 온 서점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휘트먼은 비치에게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곧바로 르 미스트랄이라는 이름을 없애지는 않았다. 그는 8년 뒤인 1964년 비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해는 마침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그제야 서점 이름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바꾸었다.


■ 대를 이은 독립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꾸준히 운영한 휘트먼은 200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훈장을 받았다. 외국인에게 이 훈장을 수여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는 2011년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그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휘트먼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서점 이름을 바꾼 지 56주년을 맞는 해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 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독서 활동을 진행한다. 일요일 차 모임과 시 낭송 행사, 작가와의 만남 등이다. 또 여러 가지 독서 모임도 운영한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매일 오전 10시~오후 10시에 문을 연다.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는 일찍 오는 손님들을 배려해 오전 9시 30분에 문을 개장한다. 낮이나 초저녁에는 서점이 붐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전 일찍 또는 저녁 늦게 가는 게 낫다. 운이 좋으면 늦봄이나 초여름 오전 서점 앞에서 열리는 시 낭송 행사를 구경할 수 있다. 아니면 7월 저녁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틈에 끼어 서점 앞 보도에 앉아 신인 작가가 낭독하는 영어 소설을 음미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텀블위드의 보금자리다. 지금도 잘 곳이 없어 찾아오는 작가나 여행객들을 재워준다. 지금까지 서점 개점 이후 텀블위드 4만여 명이 책방에서 자면서 일을 도왔다.

운영 원칙은 간단하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대접받는다.’ 텀블위드는 먼저 자기소개서를 쓴 뒤 하루 1~2시간씩 가게 일을 도와야 한다. 대신 저녁에 서점 선반 뒤쪽에 비치된 침대에서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다. 최근에 바뀐 것은 서점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다면 사전에 이메일로 연락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파리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인터넷 홈페이지(https://shakespeareandcompany.com)를 통해 책이나 기념품 등을 살 수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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