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언박싱] "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 한 잔 어때요?"
‘부산커피’의 맛있는 도전
부산항 직수입 품질 좋은 원두
장애인 바리스타 육성 ‘착한 기업’
‘부산언박싱' 시리즈는 성장 잠재력 있는 부산의 대표 사회적기업을 발굴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기술력이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사회적기업을 비롯해 부산의 색채가 묻어 있어 부산 브랜드로 성장할 만한 사회적기업,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사회적기업 등을 총 6편으로 구성합니다.
[부산 언박싱] <1> 부산커피협동조합
부산 남구 황령대로. 커피 원두를 연상케하는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커피향이 온몸을 감싼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우아한 음악 선율과 커피 내리는 소리가 향기롭게 어우러진다.
“반갑습니다”라며 미소 띤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기계를 다루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전문 바리스타 뺨치는 이들은 발달장애인.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물과 얼음을 적당히 섞어 커피를 능숙하게 내리며 여느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가 하는 일과 똑같은 업무로 하루를 시작한다.
부산커피협동조합(이사장 이성록)은 2014년 바리스타 교육 학원, 생두·자재 법인, 에스프레소 머신 판매·렌탈 사업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5명이 뜻을 모아 만든 기업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에 도전장을 내며 시작, 지역사회와 ‘상생’을 실천하며 장애인과 어르신 등 취약 계층 20여 명이 함께 모여 일하고 있다.
부산시민 입맛 사로잡은 부산커피 #A
커피 맛은 원재료인 생두(커피 원두를 볶기 전 상태)의 품질에 따라 좌우된다. 생두가 얼마나 신선한가에 따라 그 맛은 확연히 차이 난다. 조합은 설립 당시부터 원두 직수입에 정성을 들였다. 수도권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유통 과정을 줄이고 직수입을 선택해 소비자에게 더욱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시내 특급호텔들이 주거래처가 된 것도 신선한 생두를 고집하는 조합의 커피 유통 방식 때문이다.
커피협동조합 한홍규 이사는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일부러 제품을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커피 맛은 무엇보다 소비자가 더 잘 알고 있다. 경쟁력을 갖춰 더욱 맛있는 커피 생산에 주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합은 지난해 1월에 90년 역사의 유럽 에피코(EPICO)사와 공식 수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최상의 생두 로스팅에 탄력이 붙었다.
조합의 주력 상품은 부산시민 입맛에 맞춘 #A(샵에이)라 불리는 원두커피다. #뒤 붙은 알파벳은 원두의 원산지를 의미한다.
#A는 조합이 부산향토기업 300곳과 함께 고객의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빅데이터로 축적해 개발했다. #A는 베리(딸기) 향에 단맛이 더해져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특징이지만 카페라떼로 즐길 때는 딸기 우유를 맛보는 듯하다. #A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E(샵이)는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깊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장애인 바리스타 육성·‘희망 일자리’ 공급
장애인을 채용하면서 조합은 또 다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전문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발달장애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고객을 응대하며 사회적 능력을 키운다. 바리스타 이외에 원두 로스팅을 하고 볶지 않은 생두에서 결점이 있는 콩을 골라내는 핸드 픽 업무 또한 장애인 직원이 도맡는다.
현재 조합에는 10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제각각 맡은 일은 다르지만 모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애인 전형의 바리스타 자격증이 따로 있지만, 조합이 운영하는 부산커피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사)한국커피협회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취업과 연계해 조합 비스트로(작은 규모) 카페 ‘비쿱’에서 바로 현장 적응 능력을 키우도록 길을 열었다. 비쿱을 거쳐 간 장애인 바리스타 가운데 2명은 이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에 취업했다.
한 이사는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장애인 부모들이 만족스러워한다”며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고 인식을 전환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쿱에서 1년째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임우진(24·여) 씨 역시 행복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어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조합은 지난 2017년 8월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인 공로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았다. 조합은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정부나 공기업, 대기업 등이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분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조합에서 제조한 커피를 구매할 경우 연계 고용으로 인정해 분담금을 일정 비율 감면해준다.
부산을 커피 생산 메카로… 부산커피박물관 건립 목표
부산커피협동조합의 비스트로 카페 ‘비쿱’은 낮에는 주로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이자 오후 5시 이후에는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한다.
남부경찰서 옆 황령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 덕분에 이미 분위기 좋은 음식점으로도 입소문이 나 있다. 특히 유럽풍 인테리어와 어우러진 야외 테라스는 문화예술공연 장소로도 활용돼 지역민의 또 다른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조합은 크고 작은 변화를 꿈꾸고 있다. 먼저 ‘비쿱’ 1호점에 이어 2호점을 구상하고 있다. 커피 제조·판매·유통에 그치지 않고 부산 시민들이 언제나 손쉽게 커피를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내 수입 커피 물량의 80%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는 만큼 부산에 원두 창고를 조성하는 것도 향후 목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더 나아가 단순한 창고 형태가 아닌 전 세계의 커피를 맛보고 로스팅 체험까지 할 수 있는 테마형 커피박물관 등을 지어 부산의 또 다른 관광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한 이사는 “커피시장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지만, 부산서도 이제 날갯짓이 시작됐다. 커피 산업이 성장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많은 부산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
그래픽=장은미 부산닷컴 기자 mimi@busan.com
사진=윤민호 프리랜서 yunmino@naver.com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장혜진 부산닷컴 기자 jjang5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