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男걷는女] 삶을 이어준 계단,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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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광동 메리놀병원 옆 288개 계단
늘어선 집들마다 떠나는 사람만…
계단과 함께한 '점빵' 할머니 60년 일생
초등 입학통지서 받은 기억 '까마득'

걸어야 보이고, 걸어야 느껴집니다. 부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운동화 끈을 동여맵니다.

진 땅이든 마른 땅이든, 까꼬막이든 계단이든, 어디든 가겠습니다. 걸어서 부산 속으로. 저는 '걷는 여자'입니다.


<계단을 오르니, 천국이 펼쳐졌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뚜벅이'. 차를 몰면서부턴 10분 거리도 잘 걷지 않는다. 그래도 20년 넘게 뚜벅이로 살아왔는데, 걷는 것쯤이야. '본캐'는 기자. 2주에 한 번씩 '부캐' 뚜벅율(이하 '율')이 되기로 했다.

첫 번째 장소는 부산 중구 동광동 메리놀병원 옆 계단. 약국 입구에서 시작돼 부산디지털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계단 수는 무려 288개. 계단 아래서는 그 끝에 뭐가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계단 초입에 '오름 소공원 가는길'이라 적힌 안내판을 보며 계단 끝에 공원이 있겠거니 추측해본다.

율은 자신 있게 첫발을 내딛는다. PD들에게 여유로운 웃음도 지어 보인다. 마스코트 '뚜벅쵸'도 어깨 위에서 거든다. 사회부 기자 생활 3년 중 2년 동안 원도심을 담당했단 율. 하지만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는 1분도 안 돼 가쁜 숨소리로 바뀌었다. 말수는 급격히 줄고 발걸음은 더뎌진다. 절반쯤 올랐을까. "잠깐만요." 율은 걸음을 멈추고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다.

자신있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율. 하지만 1분도 안 돼 걸음 속도는 현저히 더뎌졌다. 정수원 PD 자신있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율. 하지만 1분도 안 돼 걸음 속도는 현저히 더뎌졌다. 정수원 PD

계단 끝 지점에 놓인 '오름 소공원'. 북항 오페라하우스 현장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요즘 높은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산복도로에서 바다 풍경을 보기 어려운데, 이곳은 '뷰 명소'로 꼽을 만하다. '천국의 계단'이란 별칭이 붙었다는데, 경치 때문 아닐까. 율은 매일같이 계단을 오르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르지만, 이곳엔 '천국의 계단'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경치 때문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재화 PD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르지만, 이곳엔 '천국의 계단'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경치 때문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재화 PD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 계단, 점빵, 60년

율은 다음 날 계단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혼자다. 한참을 오르면 통장님 집이 나온다. 계단의 가장 끝집. '동광동 제13통장'이란 명패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현관문 안에서 "왕왕" 소리가 울린다. 현관문 유리 틈 사이로 흰둥이가 꼬리를 세운다. 율은 강아지 시선에서 벗어나려 다시 몇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밑에서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올라온다. 통장은 '동네를 구경시켜 달라'며 찾아온 젊은이가 선뜻 이해가 되진 않지만, 안내자가 되어주기로 한다. 계단 사이 골목은 들어갈수록 좁아진다. "잘 따라오이소." 골목 안 다닥다닥 붙은 집 몇 곳엔 '공폐가'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앞서 걷던 통장이 속도를 늦추더니 한 집 앞에서 멈춰 선다. "할매, 안에 있는교? 잠만 나와 보이소."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옛날에 쌀도 팔고 동네 '점빵(구멍가게)' 하든 데라서 할매가 잘 알낍니더."


계단 옆 골목에서 낯선 '율'을 응시하던 고양이. 10초 정도 율을 바라보더니 유유히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서유리 기자 계단 옆 골목에서 낯선 '율'을 응시하던 고양이. 10초 정도 율을 바라보더니 유유히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서유리 기자

미닫이 문이 열리고, 파마머리를 한 노인이 나온다. 이 동네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는 한영자(84) 할머니. "와? 뭔일 있는교?" 통장과 율을 번갈아 보며 묻는다. 오랜만에 말상대를 찾은 듯, 눈빛이 반짝인다.

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 한국전쟁이 나자 열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남한에서 처음 정착한 곳은 거제도였다.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왔다. 영도에서 살다 22살에 계단 옆 동네로 시집을 왔다.

할머니집은 60년 전에도 점빵이었다. 남편이 총각 때 흙을 개어 지은 2층짜리 집에서 시어머니와 시숙, 부부와 삼남매가 살을 맞대며 살았다. "피난 와가꼬 하꼬방(판잣집)을 지어 살았지. 그래도 옛날에는 여서 우리집이 제일 좋았어. 기와도 있고. 근데 인자는 우리집이 제일 '하빠리'라." 할머니는 "허허" 멋쩍게 웃는다.

60년 세월은 집안 구석구석을 할퀴었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2층엔 비가 새고,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슬었다. 할머니는 보여줄 게 있다며 율을 집안으로 들인다. "이리 와서 이거 함 보이소. 이거 안 무너지겠나?" 시선이 닿은 곳엔 물이 얼어 있다. 집 뒤편 돌담에서 새어나온 물이다. 담벼락 뿐 아니라 집채 곳곳에도 생채기가 나 있다. 손이 닿는 곳에만 겨우 페인트가 발라져 있다. "사람 불러가 하믄 너무 비싸다 아이가. 이거 내가 뺑끼(페인트) 칠한 건데. 잘했제?"

할머니는 작은 딸과 함께 산다. 어느덧 예순을 넘긴 딸은 4살 때 동네 강아지에 쫓기다 도랑에 빠졌다. 그때 머리를 다쳐 장애를 얻었다.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남들보다 움직임이 더디다. 할머니는 앉으나 서나 자식들 걱정이다. 큰딸은 수도자의 길을 택했고, 결혼한 아들은 이웃 동네에서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낡은 집이지만, 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집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자 살면 얼마나 살겠노. 그냥 죽을 때까지 이래 사는 기지 뭐."

시큰거리는 무릎은 40년 전부터 할머니를 괴롭혔다. 60년 동안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 탓일까. 하긴 귀갓길도 계단이었고,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지내는 방에 가려고 해도 계단을 올라야 했다. 6년 전 한 쪽 무릎을 수술하고, 2년 뒤 다른 쪽 무릎도 칼을 댔다. 성한 다리만은 못하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나는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읍따. 피난 때 죽은 사람을 몇이나 봤다꼬. 사람들이 다 눈을 뜨고 죽어 있데. 피는 만장같이 흘렀는데. 다 눈을 뜨고 있더라고. 참 어제그제 일 같다. 다시 태어나면 그걸 다 겪어야 될 거 아이가."

젊어서는 아픈 딸을 돌보느라, 나이 들어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보살피느라 할머니의 청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102살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95살이 되던 해부터 치매를 앓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함께 살던 시숙도 세상을 떴다. 남편에겐 중풍이 찾아왔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사별하고 1년 뒤 점빵을 정리했다. 적적함은 노인대학으로 달랬다. 코로나19 탓에 요즘은 노트북으로 타자 연습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19로 노인대학이 문을 닫자, 노트북으로 타자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타자 연습삼아 성경을 친다. 서유리 기자 코로나19로 노인대학이 문을 닫자, 노트북으로 타자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타자 연습삼아 성경을 친다. 서유리 기자

■ 떠나는 이, 남은 이

동네는 시나브로 바뀌어 갔다. 할머니 집 코앞에 있던 건국중학교가 옮겨간 자리엔 맨션이 생겼다. 아래쪽 주택들도 하나둘 없어지더니 야트막한 빌라가 생겨났다. 집 위쪽으로 빼곡했던 판잣집들도 어느 순간 헐리고 공원이 들어섰다. 옛날엔 계단 중턱이었던 할머니 집이 이젠 통장님 집처럼 계단의 가장 마지막 집이 됐다.

"옛날에는 동네에 사람들이 많았어. 근데 이제 다 떠났제. 이 계단에 애들도 뛰댕기고 했는데. 근데 요 계단이 자꾸 높아진다. 옛날에는 이래 안 높았던 거 같은데..." 할머니 시선이 한참을 계단에 머문다.

통장과 율은 할머니 집에서 나와 다시 계단으로 돌아왔다. 통장님 이야기도 궁금하단 율의 말에 통장은 멋쩍은 듯 웃는다. "뭐 별거 없는데.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보소."

황보낙권(56) 씨는 스무살을 갓 넘긴 1985년에 이 동네로 왔다. 국제시장 근처 옷 공장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계단 근처에 집을 구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눌러살 줄은 몰랐다. 그는 36년째 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처음부터 이 집에 살았던 건 아니다. 첫 집은 계단 중턱 쯤, 지금은 빌라가 들어선 곳이다. 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계단 초입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신혼 생활을 하고, 아이들도 낳았다. 계단은 적게 올랐지만, 차 소리가 시끄러웠다. 동생들이 독립한 뒤 지금의 집으로 옮겼다.

10년 전만 해도 위쪽으로 집들이 가득했다. 중구청이 임대아파트를 짓는다며 집들을 사들였지만, 도로 없는 ‘맹지’에 아파트를 짓는다며 뉴스가 났다. 결국 아파트가 아니라 공원이 들어섰다.


10년 전만해도 계단을 따라 판잣집들이 가득했다. 중구청은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지으려했지만, 도로가 없는 '맹지'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비판에 결국 아파트가 아닌 공원을 지었다. 이재화 PD 10년 전만해도 계단을 따라 판잣집들이 가득했다. 중구청은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지으려했지만, 도로가 없는 '맹지'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비판에 결국 아파트가 아닌 공원을 지었다. 이재화 PD

이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떠나는 사람은 늘어만 갔다. 대부분 나이든 노인들만 남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새해가 되면 초등학생 입학 통지서를 전해주곤 했는데, 그때가 언젠지…. 전에 작은 애들도 있긴 했는데 다 이사 갔고요."

통장이 율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빌라에 사는 할머니가 난간을 짚으며 계단을 오른다. "삼촌,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안 놓나? 영주동 쪽에는 놓는다드만." 동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가 절실하지만, 구청은 '인구가 적고 계단이 좁아 어렵다'고 한다.

젊은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내려온다. 동네 사람이 아니다. 통장은 영주동에서 부산디지털고등학교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걸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고 보니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계단을 걷는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도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간다. 버스로는 둘러가야 하니 영주동 사람들이 지름길처럼 오르내린다는 설명을 끝으로 통장은 "이제 가봐야 한다"며 작별을 고한다. 율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일주일 뒤, 율은 혼자 오름 소공원을 올랐다. 영도 너머로 붉은 기운이 사라지더니 이내 어둠이 찾아왔다. 부산항대교가 불빛을 바꾸며 밝게 빛난다. 코모도 호텔도 화려한 조명을 뽐낸다. 윗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한 젊은이가 강아지와 함께 공원을 거닌다. 율은 생각에 잠긴다. '그 많던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주일 뒤 다시 찾은 오름 소공원. 해가 지자 부산항대교와 코모도 호텔의 조명이 화려함을 뽐낸다. 서유리 기자 일주일 뒤 다시 찾은 오름 소공원. 해가 지자 부산항대교와 코모도 호텔의 조명이 화려함을 뽐낸다. 서유리 기자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촬영·편집=이재화 정수원 김보경 PD jhlee@busan.com

그래픽=장은미 기자 mimi@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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