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男걷는女] 종이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 진유민 jmi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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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윤전기 '굉음'옆에서 수면 도전
신문 기사 대신 인쇄 색깔에 눈가는 기술자들
미세한 기계 소리로 기계 고장 판단해 수리
스마트폰 시대, 신문 사양산업이라는 이야기도


"거기서 왜 자노?" "여기서 잠이 올까?"

'불면의 시대'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다양한 현장, 그 속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과 접선하는 '잠'입취재.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덥거나 춥거나, 열악하거나 호화롭거나. 어디든 눈을 감고 자겠습니다. 저는 '자는 남자'입니다. 잘자요~


자는 남자 걷는 여자를 읽으러 와주신 독자님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을 응원합니다!-잠만용- 자는 남자 걷는 여자를 읽으러 와주신 독자님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을 응원합니다!-잠만용-

<흔들리는 지축> -체험기-

■ 100억짜리 사운드

자는 게 가장 쉬운 거 아니냐고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 어디든 머리를 대면 잠에 빠지는 남자. '본캐'는 기자. 2주에 한 번씩 '부캐' 잠만용(이하 '용')이 되기로 했다. 잠을 잔다고? 예능인지 다큐인지는 불분명하다. 자는 거다. 그냥.

'당신을 응원합니다' 로고가 박힌 대형 공장. 부산 외곽에서도 한참 떨어진 공장에 도착했을 때 용의 머리를 스쳐 가는 한 문장.'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 이번 취침 장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용은 편안함을 느낀다. 김해공항 옆 마을(자는 남자 1화 참조), 헬스장(자는 남자 2화 참조), 화훼농가(자는 남자 3화 참조)와는 다른 익숙함.

책임자로 보이는 파란 옷의 남자가 용을 반긴다. 용의 회사 제작국장님이다. 용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열악해도 잘 수 있을 것 같은 미소. 잠의 기본은 마음의 편안함 아니던가.

'라떼는 말이야.' 용은 선배들로부터 숱하게 '옛날이야기'를 들어왔다. 대부분 자신이 취재를 잘해서 내지는 상황이 급박해서 공장 기계를 세운 이야기다. 공장 기계를 세웠다는 건 일생일대 대사건임을 말한다. 어떤 무용담보다 기계를 세운 이야기는 후배들의 동경을 사고 귀감이 됐다. 선배들이 거침없이 세웠다는 '윤전기'. 어떤 기계일까 궁금증이 들려는 찰나 파란 옷의 남자가 귀마개를 건넨다. '웬 귀마개?' 용이 학창 시절에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산 적이 있던 주황색 ' 3엠' 귀마개다.

'궹~~~~~.' 소리가 귓속을 찌른다. 지하철이 들어올 때 나는 신호등 소리도 들린다. 어디서 나는지조차 알 수 없다. 3층 높이의 기계 전체가 한 방에 귀를 사로잡는다. 윤전기. 용이 유일하게 아는 인쇄 장비인 프린트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1층엔 제지공장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제지가 두루마리로 말려 있다. 윤전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바닥이 요동친다. '지축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다.

'잘 시간입니다.' 기계의 크기와 위력에 압도돼 방황하는 용을 제작직은 2층 윤전기 앞으로 이끈다. PD는 용에게 몸을 바짝 기대 말을 건넨다. 너무 큰 소리탓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탓이다. 처음 공장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편안함을 굉음이 무너뜨린다.

쇠 바닥에 몸을 뉜다. 앞서 세 번 자는 동안 모두가 가졌던 '진짜 자느냐'는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 장만한 '심박 수 측정기'를 검지에 꽂는다.

이윽고 기계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이 공장 출구로 쏟아진다. 쏟아지는 소리가 귀를 스치자 온몸이 긴장했는지 덩달아 심박수가 100을 향했다.

용은 침낭을 깐다. 숙면을 위해 마스크를 살짝 내려놓는다. 탁한 공기가 느껴진다. 공장인 탓에 기름 냄새와 종이 먼지 맛도 살짝 느껴지는 듯 하다. 눈을 감는다.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소음은 귀를 때리듯 시끄러웠고 바닥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용은 고백한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오후 8시 30분부터 20분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잤다는 느낌은 없었다.

잠 대신 '잡생각'만 쏟아졌다. '윤전기 돌아가는 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이 곳의 소음을 이분들은 어떻게 견디지?' '오늘 저녁 뭐 먹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돼지국밥, 햄버거, 좋아하는 음식들이 떠오르던 찰나. PD가 용을 깨운다. "못 잔 거 압니다, 일어나이소." 최신 심박측정기는 용의 심박을 일정하게 90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눈은 감고 있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나를 찍겠다는 PD들이 왔다갔다 하니 바닥이 울린다. 불면의 밤이다. 눈은 감고 있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나를 찍겠다는 PD들이 왔다갔다 하니 바닥이 울린다. 불면의 밤이다.

<세상 찍기> -취재기-

■ 희미한 신문

매일 아침 차 부장은 해가 중천을 향해 갈 무렵 일어난다.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관문 우측에 누가 던진 듯 놓인 신문을 가져오는 일이다. 근래 신문 보는 집이 많이 줄었지만 차 부장은 30년째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애독자다.

차 부장은 쇼파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 뿌듯한 표정으로 찬찬히 신문을 넘긴다. 까무잡잡한 손등과 뭉툭한 손가락에 용케도 종이가 한 장 한 장 걸린다. 오늘 신문은 얼핏 본, 다 아는 이야기다. 사실 어제 신문도 그랬다. 신문은 재빠르게 마지막 광고면에 다다랐다. 오늘 마지막 광고는 아파트 광고다. 파란 하늘에 형형색색 풍선이 날리는 광고. 어린아이가 해맑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위아래로 신문을 훑던 차 부장은 신문을 바싹 눈 쪽으로 끌어당겼다. 눈살을 찌푸려 어린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빨간색이 진하고 노란색이 약하네" 혼잣말로 되뇌인다. 아이의 얼굴엔 붉은 기가 가득했다.

차 부장의 시선은 줄곧 신문 아래를 향한다. 신문을 펴면 그날의 가장 중요한 소식, 각 면마다 흥미를 끄는 기사는 대개 신문의 위쪽에 있다. 아래 쪽에는 아파트 광고, 전자제품 광고, 지자체 홍보 등 각종 광고가 형형색색 면마다 펼쳐진다. 면을 넘기면서 한 번쯤 기사를 읽을 만도 하지만 검은 글자에는 도통 눈이 머물지 않는다. 이따금 보는 글씨도 작디작은 광고 안 깨알글씨에 머문다. 입사할 때부터 들었던 말. '신문은 보되 읽지는 마라'는 격언 아닌 격언은 30년 묵은 습관이 됐다.

차 부장은 신문을 보고 또 본다. 사실 그가 어제 잠들기 전까지 공장에서 보던 신문이다. 어쩌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본 사람이 차 부장일 테다. 윤전기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 수십 차례 보고 확인하는 게 그의 일이지만 몇십 년째 다음 날 아침 다시 신문을 보는 일을 반복한다.

차 부장은 믿고 있다. 잉크가 마른 신문과 잉크가 갓 발린 신문은 무조건 다르다고. 만들자마자 받아든 따뜻한 신문과 배달을 거쳐 집 앞에 온 완성품은 잉크의 번짐이 다르다. 잉크가 마르면서 다른 제품이 된다. 말라서 집 앞에 배달됐을 때를 고려해서 만들지만, 어떤 날은 떡이 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고장난 프린트에서 인쇄된 것 같은 빛 바램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차 부장 눈에만 보이는, 미세한 희미함과 떡짐이다.


기계가 돌아가는 사이 또 확인하고 확인한다. '신문은 읽어도 기사는 읽지마라.' 직원들은 기사 대신 색깔을 본다. 기계가 돌아가는 사이 또 확인하고 확인한다. '신문은 읽어도 기사는 읽지마라.' 직원들은 기사 대신 색깔을 본다.

■ 거슬리는 소리

차 부장이 35년째 근무하는 곳의 공식 명칭은 윤전부다. 사람들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공장 다닌다"는 말로 대답을 하는 게 보통이다. 공장의 성격은 불분명하다. 인쇄업인지 출판업인지 업태는 애매하다. 출판업이라고 소개하면 다들 조금은 고상한 일을 상상한다. 그렇다기엔 현장은 너무 고상하지 않다. 인쇄업이라기엔 인쇄는 하지만 일반 인쇄공장과는 조금 다른 '특수한' 일이다.

이 특수한 공장은 '윤전기'라는 회사 보물 1호로 돌아간다. 100억 원이 넘는, 35년 전 차 부장이 입사할 때도 있던 그 기계다. 거액의 보물답게 새로 사기도 어렵다. 사실은 파는 곳도 잘 없다. 중고를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차 부장이 입사할 당시엔 보물 3호까지 있었다. 하지만 2대는 팔았다. 갈수록 신문을 보지 않는데 3대까지 필요하지 않았다. 기계를 팔던 날, 직원들은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회사에 이 기계를 고치고 작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9명. 300명 가량의 직원들 중 이들의 윤전기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차 부장과 같은 부장직급인 허 부장은 이 기계에 매료돼 입사했다. 신문에 난 윤전기 운영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에 눈이 갔다. 기계과를 졸업하고 기계다운 기계를 만져보고 싶었다. 아무나 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어언 30년이 흘러 회사 보물 1호는 허 부장과 차 부장이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기계가 됐다.

기계는 매일 매일 상태를 알리는 사인을 보낸다. 기계의 사인은 소리다. 일반인들은 용처럼 '왱~'하고 굉음이 쏟아진다고 느끼지만 부장들 귀에는 둔탁한 소리, 잡음 등 미세한 차이가 들린다.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서 불협화음을 낸 악기를 바로 알아채는 것과 같다. 잡음은 고장이 났다는 의미다. 일일, 주간, 월간 정비를 매번 하지만 때때로 기계를 뜯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소리가 더 정확하다.

"차 부장, 기계 소리가 와 이래 둔탁하노"

"그래예? 확인 한번 해볼게예."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롤러에 기름칠을 하고 인쇄가 끝나면 '잔지'를 매번 처리하지만 큰 기계에 종이가 끼고 인쇄판이 끼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인쇄 도중 윤전기가 섰을 수도 있었다. 소리가 조금 신경에 거슬렸던 날은 판이 기계에 걸리기도 하고, 종이가 찢어져서 나오기도 한다. 기계는 굉음 속에서 자신의 상태를 시시각각 말하고 있다.


윤전기는 160분간 총알을 연사하는 기관총처럼 신문을 토해낸다. 이 와중에 용의 눈에 들어온 '부산일보' 제호. 아무리 '빛의 속도'로 기계가 돌아가도 월급 주는 회사 이름은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윤전기는 160분간 총알을 연사하는 기관총처럼 신문을 토해낸다. 이 와중에 용의 눈에 들어온 '부산일보' 제호. 아무리 '빛의 속도'로 기계가 돌아가도 월급 주는 회사 이름은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 오래된 보물

서른 살이 넘은 윤전기는 1시간에 6만 부 24개 면을 컬러로 찍어낸다. 원래 한 시간에 12만 부까지 가능하지만 오래된 연식은 기계 효율을 반으로 줄이게 했다. 무게 1.2t의 대형 제지 롤을 1층에서 걸고, 내용이 인쇄된 판(유니트)을 2층에서 걸면 판에 맞게 종이에 내용이 찍힌다. 기계에 찍힌 그날의 소식은 자동으로 접혀 트레일러를 타고 대기 중인 신문 배달용 트럭으로 향한다.

기계를 돌리기 위해 준비 시간만 2시간. 전원을 켠다고 바로 기계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롤러를 닦고 혹여나 종이가 낀 데는 없는지, 잉크 '똥'이 남아 있진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민감한 윤전기는 잉크 똥이 걸려 행여나 오작동을 하면 종이 수만 장을 날려버린다.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일.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담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오늘의 이야기를 부족하나마 가득 담아내기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지만 실제 윤전기 돌아가는 시간은 옛날 300분에서 160분으로 점점 줄었다. 오후 10시 10분이면 윤전기는 작동을 마친다. 그만큼 찍는 양이 줄었다는 말이다.

공장 사람들에게도 옛날의 화려했던 '라떼는 말이야'가 있다. 신문사답게 윤전기 세운 이야기다. 이따금 안 고쳐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 틀리면 기계는 멈춘다. 수능 날짜가 잘못 인쇄된 적도 있고,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아 기계가 못 돌아간 적도 있다. 9·11 테러 때는 만든 신문 전체를 다 버렸다.

차 부장과 허 부장은 오후 3시에 회사에 도착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석간신문 시절)했지만 6년 전 업무 루틴이 변경됐다. 업무 시간이 바뀌어 많은 직원이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차 부장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저녁신문(석간)을 사람들이 많이 안 본다 카이 우짜겠노."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출근하는 게 맞지, 참 힘들어짓네예."


아무도 정확한 가격을 알지 못한다. '100억은 할 거다'라는 말만 있을 뿐. 30년이 넘어 부속품을 바꾸고 변형하다보니 비싼 기계라는 사실만 남게 된 윤전기. 아무도 정확한 가격을 알지 못한다. '100억은 할 거다'라는 말만 있을 뿐. 30년이 넘어 부속품을 바꾸고 변형하다보니 비싼 기계라는 사실만 남게 된 윤전기.

■ 사양산업

"언제까지 윤전밥 먹을 기고?"

"누가 그라데. 사양산업이라고. 딱 맞는 말이더라. 요새 누가 윤전 배우노? 인쇄 중에서도 신문 윤전은 젤 하급이라카이."

37년간 일하다 지난해 회사를 떠난 이 부장은 '신문은 가장 하급 인쇄기술'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품질보다는 속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신문은 다른 인쇄직과는 달랐다. 품질에 대한 품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 인쇄업계에서는 크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못 되는 것이 현실이다. 15년차가 막내인 윤전부에서 기술을 더는 배울 사람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가진 건 '100억 짜리 기계를 다룬다'는 자부심뿐이다. 전국에 윤전기 돌리는 공장이 10곳 남짓한 탓에 그나마 있는 자부심도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시대는 점점 신문공장 사람을 사양산업 종사자로 만든다. 다른 상업 인쇄는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신문 분야는 위기가 더욱 빨리 찾아오고 있다. 십 년 전만 해도 회사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면 승객들이 어떤 신문을 보는지 유심히 봤지만, 이제는 신문 보는 사람을 찾기가 불가능해졌다. 신문의 자리는 스마트폰이 대체했다.


기사를 쓰고 있는 3월 3일. 용은 출근이 늦어 신문을 줍지 못했다. 회사 직원이라고 신문을 공짜로 보는건 아니다. 집에 오는 신문은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이다. 기사를 쓰고 있는 3월 3일. 용은 출근이 늦어 신문을 줍지 못했다. 회사 직원이라고 신문을 공짜로 보는건 아니다. 집에 오는 신문은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이다.

접힌 신문

매일 아침 8시 일어나 용은 헐레벌떡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면 첫 선택의 순간이 용을 맞이한다. '저걸 어떻게 하지? 주울까? 말까?'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여유가 있으면 허리를 숙이고 접힌 신문을 줍고 허겁지겁 집 문 도어락을 누른다. 문틈 사이로 신문을 던져 넣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엘리베이터가 곧 도착하면 신문은 종일 문 앞에서 접힌 채 놓여 있다. 용이 퇴근하기까지 10시간가량. 신문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신문에 실린 뉴스가 옛날 이야기가 된 저녁 무렵. 용은 퇴근과 동시에 베란다 분리수거 가방에 신문을 넣는다. 매주 목요일 내놓는 분리수거 쓰레기 중 용의 집에서 나온 게 특히 눈에 띈다. 같은 동에서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은 용밖에 없는 탓이다. 용의 쓰레기엔 펴지 않은 신문 7부가 있다.

용은 출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네이버를 눌러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고른다. 엄지로 재빨리 기사를 스캔하며 차로 향한다. 기사를 다 읽을 때쯤 용은 운전석에 오른다.

출근 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용은 습관적으로 '크롬'을 누르고 '부산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뉴스페이지를 본다. 다 보고나면 AI가 추천한 뉴스도 읽는다. AI는 정확하다. 내 관심사를 꿰뚫고 있다. 주식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주린이'라는 걸 어찌 아는지 '삼성전자 10만 원을 갈 수 있는지?'를 분석한 기사가 용의 엄지를 유혹한다.

용은 노트북으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누르며 며칠 전 만난 부장님들을 떠올린다. 매일 저녁과 아침, 자신의 만든 제품의 미세한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신문을 보는 이들. 같은 '신문밥'을 먹으면서 차마 네이버로 뉴스를 본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왠지 죄송하기도하고 신문인으로서 반성이 들던 찰나. 마우스 커서는 습관적으로 또 다른 기사로 향한다. 신문 안 보는 세상이지만, 세상은 여전히 잘도 빠르게도 돌아가고 있다. 세상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촬영·편집=이재화·김보경 PD, 진유민 작가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 진유민 jmi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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