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담아낸 한국 ‘신의 집’
박찬호 '신당' 사진전…예술지구P
신과 신화, 산업화 통해 외면 받고 사라져
“충만한 신기가 채워진 공간 기록”
박찬호 '신당(神堂)_충남 은산별신당 만신 이일구 국가중요무형문화제 은산별신제 전수조교'. 예술지구P 제공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낡은 건물, 무신도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무녀.
한국 신화의 공간을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을 만나는 전시. 박찬호 사진전 ‘신당(神堂)’이 29일까지 부산 금정구 회동동 예술지구P에서 개최된다. 박찬호 사진가는 한국 고유의 제의와 관련된 문화를 오랫 동안 기록해 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서 시작한 그의 ‘사적 고민’은 인간의 근원에 대한 ‘공적 고민’으로 확장됐다.
박 작가는 종가집의 유교적 제의, 전통 장례, 불교식 제의, 다비식 등 죽음이나 추모와 관련된 장소를 지속적으로 찾아 카메라에 기록했다. 그의 사진 작업은 2016년 온빛다큐멘터리 기획전으로 소개됐고, 이후 싱가포르 국제 사진페스티벌 오픈콜 작가로 선정돼 싱가포르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2018년 미국 <뉴욕타임즈>에 박 작가의 사진과 작업 세계가 소개되기도 했다.
마고할미, 계양할매, 설문대할망, 단군, 주몽, 용왕, 산신, 영등신, 삼신할매부터 마을 조상인 입향조가 형상화한 본향신(조상신) 등 수많은 신은 민초들에게 있어 신앙의 대상이었다. 박 작가는 작업 노트를 통해 “한국 여러 신과 신화가 통치자의 이념과 산업화 시기를 겪으며 외면 받고 사라졌다”고 밝혔다.
박찬호 '신당(神堂)_제주도 신천리본향당 매인심방 강복녀'. 예술지구P 제공
박 작가가 사진에 담아낸 ‘신당’들은 마지막 남은 한국 신화의 공간들이다. 이곳을 지키는 ‘신관’은 국가로부터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통 신앙의 맥을 이어간다. 이곳을 지키는 신관의 ‘무가’를 통해 신화들이 구전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신의 집’ 대다수는 일년에 단 한번 마을제가 열릴 때 문을 여는 곳들이다. 함부로 문을 열면 마을에 액운이 함께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진 작업을 위해 외부인에게 처음으로 문을 연 곳도 있다.
한국의 신들은 공간에 머무르며 신관의 몸을 통해 현신한다. 박 작가는 “신당과 신관이라는 각기 다른 개체가 하나가 되어 신화의 공간에 영적 에너지를 채워 신을 부른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진을 통해 충만한 신기가 채워진 공간을 박제한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굿 현장에서 신을 부르는 악기의 장단과 박자에 따라 몸이 흔들림을 느낀다고 전했다. “눈을 감고 접신의 순간을 맞이하거나 정신 세계로 몰입할 때 몸과 마음을 의탁한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박 작가는 이것이 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신당’ 전시는 재개발과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진 공간, 그로 인해 잊힌 우리의 신화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박찬호 작가는 올 1월 신당과 신관을 찍은 사진집 <신당>(나미브)를 출간했다.
▶박찬호 사진전 ‘신당(神堂)’=29일까지 예술지구P. 010-3753-6809.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