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고양이] '15cm의 배려' 덕분에 오늘도 살아갑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장은미 기자 mi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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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고양이-동물동락] 길고양이 ③배려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구조나선 캣맘·캣대디
길고양이 보호 내용 담은 부산시 조례도 개정
수영구 망미골목서도 ‘선냥한 이웃’ 캠페인

*'편집국 고양이-동물동락 프로젝트'는 <부산일보> 4층 편집국에 둥지를 튼 구조묘 '우주'와 '부루'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그리는 기획보도입니다. 우주와 부루의 성장기를 시작으로 동물복지 현안과 동물권 전반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길고양이. 이미지투데이 길고양이. 이미지투데이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 된 길고양이. 미우나 고우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됐는데요. ‘편집국 고양이-동물동락 프로젝트’ 길고양이 편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소개합니다.


■재개발 ‘길냥이’ 구조 대작전

2018년 겨울, 한때 주택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던 해운대구 반여 1-1 재개발 현장. 삐져나온 철근, 깨진 유리 파편,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 사이를 고양이들이 위태롭게 넘어 다닙니다. 재개발사업이 확정되면서 사람들은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고양이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더 이상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깨끗한 물도 마실 수 없지만, 이곳이 제 영역이었던 아이들은 공사 차량이 들어와도 떠날 줄을 모릅니다.

2018년 부산 해운대구 반여 1-1 재개발구역 철거 당시 고양이들의 모습입니다. 최명환 씨 제공 2018년 부산 해운대구 반여 1-1 재개발구역 철거 당시 고양이들의 모습입니다. 최명환 씨 제공

평소 이곳 주택가 고양이들을 돌봐오던 캣대디 최명환 씨는 철거 소식에 고양이들의 안전이 걱정됐습니다. 앞서 부산 동래구의 어느 한 재개발 구역에서 철거 공사 도중 고양이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마땅한 사례가 없어 도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뜻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재개발 현장에 길고양이뿐 아니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에도 도움을 구했습니다. 해운대구청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구청을 통해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에 길고양이들의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요구사항은 이랬습니다. 철거 공사가 진행되기 전 고양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철거 시작 시 땅을 울려 고양이들이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가림막으로 막힐 경우 공사장에 갇혀 매몰될 우려가 있는 만큼, 15㎝ 정도의 고양이 이동 통로를 요청했습니다.

처음엔 모두들 ‘의아하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합과 시공사에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은 배려로 하나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 겁니다. 시공사가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 덕분에 이곳의 고양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엔 반여 1-2 재개발구역이 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명환 씨를 비롯한 캣맘들은 이 사업장에도 길고양이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이곳 조합 역시 “길고양이 보호에 힘쓰겠다”며 구청에 공문을 보내왔다는데요. 1-1구역 처럼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 1-1 재개발 구역 철거 당시 시공사 측이 만들어 준 고양이 통로. 최명환 씨 제공 부산 해운대구 반여 1-1 재개발 구역 철거 당시 시공사 측이 만들어 준 고양이 통로. 최명환 씨 제공

2019년 부산 동래구 온천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도 모범이 될 만한 사례가 나왔는데요. 민관이 힘을 합쳐 재개발 지역의 길고양이들을 구출하기로 한 겁니다. 이름하여 ‘온천냥이구조프로젝트’. 캣맘과 동물단체 등으로 구성된 ‘온천냥이구조단’이 구조 활동을 벌이면, 지자체에서 중성화 사업 등 행정적인 지원을 뒷받침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온천냥이 구조단은 2019년 7월 12일부터 2020년 4월 26일까지 온천4구역 일대의 길고양이들을 구조했는데요. 9개월의 활동 기간 중 총 320마리를 구조했습니다. 이 중 176마리는 안전한 곳에 풀어주고, 아픈 고양이들은 치료한 후 입양을 보내거나 임시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온천냥이 구조단은 해단한 이후에도 남은 고양이들이 입양을 갈 수 있도록 ‘온천냥이 행복프로젝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부산 동래구 온천4 재개발구역의 고양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친 '온천냥이 구조단'. 동래구청 제공 2019년 부산 동래구 온천4 재개발구역의 고양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친 '온천냥이 구조단'. 동래구청 제공

부산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동물보호 대책을 세우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부산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가 시행됐는데요. 이에 따라 구청장은 정비구역 내 동물의 보호·관리를 위한 노력하고, 시장은 정비 계획 수립때 이를 포함하도록 구청장에게 권고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조례 시행 이후로 지정된 곳에 한해서만 적용되고, 권고 수준에 그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권고에 그치는 데다 소급이 안 되다보니 아직 많은 현장에서 적용되지는 않는 실정이다.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현장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니 앞서 모범이 된 현장들 처럼 조합과 시공사들이 길고양이 보호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전했습니다.


■ 우리들의 ‘선냥한’ 이웃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건데요. 이들은 급식소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중성화수술(TNR)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선냥한 이웃 캠페인’. 캠페인에는 비온후 책방을 비롯해 △씨네포크 △아트랩 △자매식당 △책방동주 △책방한탸 △파우재 △현대미술회관 △홍순덕 전포양곱창 9개 가게와 10통 통장님이 동참합니다.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의 ‘선냥한 이웃 캠페인’을 주관하고 있는 비온후 책방의 급식소. 비온후 책방 제공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의 ‘선냥한 이웃 캠페인’을 주관하고 있는 비온후 책방의 급식소. 비온후 책방 제공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골목의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서 부터입니다. 이 가게 저 가게에서 밥을 챙겨먹는 고양이 ‘양다리’가 다섯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요. 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 중 한 마리가 그새 자라 또 새끼를 낳았습니다.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해 TNR을 요청했지만, 예산이 떨어져 어렵다는 구청. 비온후 책방의 이인미 대표는 골목의 커뮤니티인 ‘망미골목 아름다운 이웃’에 이 사연을 알렸는데요. 커뮤니티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이 급식소 운영과 TNR 비용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우선 TNR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양이 달력을 판매했는데요. 판매 비용 일부가 길고양이를 위해 쓰인다는 소식에 부산뿐 아니라 서울과 제주 등에서도 구입해 갔습니다. 캠페인 소식을 듣고 여러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요. 비콘그라운드 입주기업인 비틀에서는 길고양이 급식소 틀을 만들고, 온그루 창작센터에서는 밥그릇을 만들어 지원했습니다. 동래의 한 동물병원에서도 저렴하게 TNR을 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고 합니다.

참여 가게들은 급식소를 가게 앞에 설치하고 밥을 가득 채워 놓습니다. 어느덧 가게 주인들과 깊은 유대 관계가 만들어진 녀석들은 이곳에서나마 경계를 늦추고 주린 배를 채우고 갑니다. 지난 14일엔 10마리의 고양이가 TNR을 끝내고 다시 골목으로 돌아왔는데요. 수술이 잘 됐는지 금방 활력을 되찾았다고 하네요.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의 식당 ‘파우재’ 마당에도 길고양이 급식소가 놓여있습니다. 비온후 책방 제공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의 식당 ‘파우재’ 마당에도 길고양이 급식소가 놓여있습니다. 비온후 책방 제공

물론 이 골목에서도 갈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골목에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걸 탐탁지 않아 몇 마디씩 남기곤 합니다. 그때마다 서로 조율하며 오해와 갈등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들 공동체는 이번 캠페인 이야기를 담은 미니북도 제작할 계획인데요. 미니북의 수익금도 망미골목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위해 쓸 예정이라고 합니다.

길고양이가 밥 먹을 한 편의 공간도 내어주기 어려운 요즘. 이곳처럼 마음 편히 먹고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좀 더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편집국 고양이 소식도 전해드립니다. 부루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도 벌써 2주가 되어갑니다. 아직 눈에 띄게 나아지진 않지만, 꾸준히 약을 먹으며 컨디션을 회복 중입니다. 한동안 우주가 부루를 낯설어하며 잔뜩 경계했는데요. 요 며칠은 익숙해졌는지 마주보고 밥을 먹기도 합니다. 다시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싫어하지 않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우주와 부루가 편집국에 온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편집국원들이 집사가 된 지도 어느덧 100일을 넘겼네요. 우주와 부루의 행복한 묘생을 위해 편집국 집사들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 업로드되는 영상도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영상·편집=장은미 에디터 mimi@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장은미 기자 mi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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