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울 공화국 위한 문화적 향유를 국민의 문화적 향유로 호도 마라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2021년 7월 7일은 한국지역문화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역문화 시대를 지향하는 현실 속에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문체부 장관이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 진흥시대에 문체부 장관이 이런 발표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문체부 장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그동안 전국의 지자체들이 지역문화시대를 열어 나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지역에 소위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가칭·이하 ‘이건희 기증관’) 개관을 요청했다.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격차가 갈수록 심각하고, 이로 인해 국민의 문화향수권 역시 불균형이 깊어만 가고 있어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문화진흥법까지 제정해서 시행 중이다. 이 법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문체부는 이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아니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이라도 거쳐야 했다. 열린 문화행정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얼마나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이고 반분권적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건희 기증관’ 유치에 나선 지자체의 반발과 관련, “국민의 문화적 향유, 이 가치를 가장 가운데 놨다”며 접근성을 고려해 서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건희 기증관’이 서울에 있어야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모든 국민이 다 서울에 모여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울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도대체 접근성을 위해 서울로 결정했다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직도 지역분권 시대에 이런 생각에 갇혀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한국의 문화시설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문체부가 ‘이건희 기증관’조차도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 정부가 문화정책의 중요한 하나로 지역문화분권 실현을 내세워 놓고,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시설을 서울에 두게 한다는 것은 문체부 자체의 자가당착이다. 정해 놓은 정책을 스스로 뒤집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서울 집중으로 이 나라가 이상한 서울 공화국이 되었는데, 또 하나의 문화시설을 만들어 지역의 사람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겠다는 발상은 국가의 균형발전은 말뿐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또 한 가지 더 지역문화 예술인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연구와 보존 관리였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과 인력이 필요하다. 기증품이 서울에 있어야 여러 가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수준은 서울을 따라갈 수 없으니,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논리가 숨겨져 있다. 지역문화 관련 기관이나 연구자들의 수준을 비하하는 발언이다. 지역에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 이상의 역량과 연구력을 가진 자들이 곳곳에 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연구와 보존 관리 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 현실인식이다.
발표내용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문화국가로서의 균형발전에 대한 전략과 문화분권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전국 모든 지역문화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이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건희 기증관’ 서울 설치 반대 운동을 지역시민들과 함께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이 운동은 이제 시작된 동남문화권을 형성할 부울경이 주도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일차로 부울경의 모든 문화기관들과 문화예술 단체들이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동남문화권 연대를 제대로 형성함으로써 문화분권의 새로운 모형을 보여 줄 때다. 문화의 힘으로 동남권연합의 정치와 경제를 추동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