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부산 달음산 지하에 日 전범기업이 만든 ‘조선 5대’ 구리광산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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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스터리 수사대 '날라-Lee'.

<부산일보> 독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날라'주는 '이' 기자입니다.

갈고 닦은 취재 기술로 도심 속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문득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말고 제보해주십시오. 동네 어르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작은 제보가 거대한 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잇따른 동굴 탐험에 감사한 제보도 끊이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부산에 이렇게 동굴이 많은지 몰랐다"는 반응입니다.

이번엔 기장군 일광면에 일제강점기 구리광산 흔적이 있다는 제보입니다. 광산 아래에는 강제동원 역사가 깃든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부산울산고속도로 바로 밑. 달음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보입니다. 입구에는 정겨운 시골 정자와 함께 '광산 마을' 표지판이 섰습니다.

"저 산등성 보이시죠? 걸어가면 한참이고, 차로 돌아가면 금방 갑니다. 저쪽으로 돌아가서 사잇길로 들어간 다음에…."

마을회관 앞에서 한 주민이 광산 존재를 확인시켜줬습니다. 차로 가는 길은 너무 복잡해 걸어가기로 결정. 마을 옆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랐습니다.


10분가량 오르자 어느새 좁은 산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니, 한 개울이 나타났습니다. 기분 탓인지 몇몇 바위에 붉은빛이 도는 듯합니다. 예전 금련산 구리광산(busan.com 3월 25일 자 '부산 도심 한복판에 광산? 금련산 80조 구리 매장설') 취재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길을 잘못 들었음을 직감하고 갈림길 오른쪽으로 다시 진입했습니다. 그러고 나타난 광산. 지금은 철조망이 쳐진 채 광해방지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폐광 후 발생하는 갱내수 오염, 먼지 날림 등을 막는 사업입니다.


다행히 한국광해관리공단 도움으로 갱구를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굴이 막혀 있는 상태. 굴 입구에는 갱내수를 정화하는 시설이 여기저기 설치됐습니다. 동굴에서 나오는 물을 빼는 전용 배수관도 보입니다. 갱구 옆 바위에는 토사 붕괴에 대비한 검은색 약품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작업자는 "굴에서 나온 물이 기계실로 들어가 약품처리되고, 침전실에서 한 번 더 걸러진다"면서 "갱구는 여기 한 곳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광산에서 내려오던 중 과거 중금속에 오염됐었다는 계곡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광 광산은 일제강점기 말 일본의 자원 약탈을 위해 개발됐습니다. 닛코 광산으로도 불렸으며, 일본 대표 전범기업인 스미토모광업주식회사에서 운영했습니다. 조선 5대 구리광산으로 알려질 정도로 채산성이 우수했다고. 6·25 전쟁 이후에도 중석을 캐며 규모가 커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이 떨어졌고 1990년대 말 폐광됐습니다.

최원순(59) 마을이장은 광산의 옛 모습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충청 이남에서 광물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굴 안으로 100m 들어가면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의 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위로, 밑으로, 옆으로 길이 다 나 있었다네요. 당시 달음산 땅 아래가 해골 형태처럼 복잡하기 뚫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일본 사람이 무자비하게 광물을 캔 거죠."


광산이 개발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도 형성됐습니다. 사무실과 간부급 사택, 일반 사택 등 20여 채가 초기에 지어졌습니다.

일부 수리가 이뤄졌지만, 지금도 적산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눈썹 처마, 모서리가 각진 석축, 비늘 합판 등 특유의 건축 형태가 곳곳에 보였습니다.


광산 개발 때 만들어진 최고 간부 사택에 들어가 봤습니다. 천장이 높은 목조 건물에 다다미식 마루가 깔렸습니다. 고위직답게 양쪽으로 방이 2개 나 있고, 별도 화장실도 있습니다. 장롱, 형광등 스위치 등도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97세 할머니께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버지가 모두 광산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도배하고 온돌 놓고 리모델링해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목조 천장이라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웃풍이 많이 들어옵니다."


간부 사택 옆으로 일반 근로자 사택이 똑같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인과 일본인의 거주 환경은 크게 달랐다고.

같은 평수임에도 일본 근로자는 2세대가 살았고, 한국인은 5세대가 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마치 의도한 것처럼 한국인 사택은 일본인 사택보다 한 계단 아래에 배치됐습니다.


일광 광산은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일본은 자원 약탈도 모자라 많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당시 근로자 증언에 따르면 1944년 4월 1일 한국인이 징용돼 휴일도 없이 2교대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최원순 이장은 "일본에 붙들려 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여기에 남아 일을 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인이 떠나간 뒤에도 아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광 광산은 제대로된 폐광 절차를 거치지 않아,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배출됐습니다.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마을인 만큼, 주민들은 고속도로 아래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창문이 얇은 옛 일본식 주택이다 보니, 새벽 2~3시만 되면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친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외딴 마을처럼 방치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비록 슬픈 역사이지만,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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