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⑫] 상하이 월드엑스포가 부산에 남긴 메시지
대한민국의 미래, 부산엑스포 유치 응원 연속 기획 최종회
최근 아시아에서 열린 역대 최대 2010 상하이월드엑스포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위해 알아야 할 상하이의 교훈은
2010년 상하이엑스포 당시 화려하고 웅장한 중국관 모습. 부산일보DB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 열린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2010년 상하이월드엑스포다.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엑스포 개최를 꿈꾸는 대한민국과 부산은 그런 상하이의 경험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상하이는 서양과 접하는 무역항을 갖추고 물류·해운·금융 등 경제가 발달한 데다, 외세와 얽힌 비운의 역사까지 품은 도시다. 해양과 대륙의 접점으로 임시수도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도시 부산과 여러 모로 닮은 면이 많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상하이시와 부산시는 오랜 자매도시다. 두 도시는 1993년부터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산시는 상하이무역사무소를 별도로 운영한다.
사실 상하이월드엑스포는 대한민국에 아픈 상처를 남겼다. 대한민국 여수시가 4차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경쟁 끝에 상하이에 패해 등록엑스포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남긴 교훈을 잘 살피면 부산월드엑스포 개최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월드엑스포로 도약한 일본처럼,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010년 상하이월드엑스포로 중국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하길 원했다.
상하이시는 엑스포를 계기로 황푸강변을 재개발해 도시를 대개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상하이 푸둥지구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월드엑스포가 있었던 셈이다. 엑스포 주제도 그에 맞춰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으로 정했다. 이는 북항 재개발 지역을 활용하려는 2030부산월드엑스포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전시장에 몰린 관람 인파. 어지간한 나라의 전시관에 들어가려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부산일보DB
국제박람회기구(BIE)의 2010년 월드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앞둔 2002년. 중국 정부와 상하이시는 국제 공모를 통해 황푸강변 개발 마스터플랜을 확정했다. 핵심지역을 월드엑스포 개최 부지로 활용하는 내용이었다.
상하이시는 황푸강 수변 개발이 절실했다. 당시 황푸강 유역에는 조선과 철강, 화학 등 국영 공장과 발전소가 즐비하게 채워져 있었다.
도시의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부두와 공장, 창고가 가득한 황푸강 동쪽 지역에 신흥 주거지와 상업지역, 관광지를 갖춘 미래 도시를 계획했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중국은 월드엑스포 유치 확정과 함께 곧장 공장과 사람을 이전시키는 작업에 돌입한다. 강변지역과 도심 사이 교통망을 연결하고, 문화유적을 보존하면서도 차별화된 도시 경관을 강변에 조성하려고 애썼다.
상하이시는 특히 월드엑스포를 계기로 5개 도시철도 노선(199km)을 신설한다. 노선 420km가 추가돼 도시철도 규모가 뉴욕, 런던과 맞먹는 도시가 됐다.
홍차오공항이 새롭게 단장되고, 푸둥국제공항이 증설됐다. 해저터널과 여러 교량이 개통하는 등 교통 인프라에 엄청난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대규모 택지 개발로 도시 인프라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드디어 상하이월드엑스포가 2010년 5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6개월간 문을 열었다. 중국의 국력을 쏟아부은 덕에 상하이엑스포는 역대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우선 상하이월드엑스포 전시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는 그 규모에 놀랐다. 530만㎡(16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를 192개국, 50개 국제기구, 50개 도시, 18개 기업관이 가득 채웠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부지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실내 공간만 328만㎡(99만 평)에 달했다. 이전까지 열린 월드엑스포보다 두세 배 넓은 것이었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전시장의 한국관 모습. 부산일보DB
상하이월드엑스포 관람객은 무려 7308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전 최고 기록인 1970년 오사카엑스포 6421만 명을 가뿐히 제친 것이었다. 하루 최다 입장객도 103만명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겼다.
붉은 목조 기둥과 하늘로 솟는 듯한 지붕을 한 중국관은 동양의 왕관을 본떠 설계됐다. 6만 8000㎡에 달하는 전시장을 갖춘 거대한 건물은 중국의 위상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중국관 안에 성·직할시·자치구를 보여주는 지역관을 두고, 홍콩·마카오·대만관까지 배치한 것 역시 의외였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한국기업관 전경. 부산일보DB
우리나라는 월드엑스포 참여 이후 처음으로 국가관과 별도로 공동 기업관을 지어 10여 개 이상의 국내 대표 기업의 참여를 이끌기도 했다. 독특한 디자인과 한류 문화 콘텐츠 등으 가득 채운 한국관도 크게 인기였다.
상하이월드엑스포가 끝난 뒤 건물 대부분을 시민을 위한 박물관과 전시관 등으로 활용한 점 역시 부산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포스트 엑스포’를 미리 계획한 것이다.
엑스포조직위가 건설한 중국 국가관은 중국 예술박물관으로, ‘엑스포 축(Expo Axis)’은 지하 쇼핑몰로 변신했다. 또 엑스포 문화센터는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로, 주제관과 미디어센터는 상하이월드엑스포 전시장과 컨퍼런스 시설이 됐다. 이외에도 여러 시설이 미술관, 중국산업박물관, 5성급 호텔 등으로 활용됐다.
상하이월드엑스포는 처음으로 도시계획을 제대로 소개한 등록엑스포로도 기록됐다. ‘도시 모범사례의 장(Urban Practice Area)’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공간 변화 사례를 소개하고, 지식을 교환하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엑스포가 끝난 뒤 이 공간은 ‘상하이 창조산업 구역’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상하이월드엑스포 당시 활발한 시민참여에도 눈길이 간다. 개최 준비와 사후 활용 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자연스럽게 유도됐다. 상하이 시민 60만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것으로 기록됐다.
상하이시는 노동절 연휴를 포함해 개막일부터 5일간을 휴일로 지정했다. 상하이 시민들에게는 엑스포 입장권을 제공했고,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사전에 시민토론회 등을 수시로 열어 의견을 반영했다.
이처럼 상하이월드엑스포는 도시의 격을 높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새로운 개발 개념과 방식, 혁신적 기술 등 지역개발 정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고, 시민들의 의식까지 높여 상하이가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하도록 도왔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당시 엑스포 사상 최초로 참여한 북한관 모습. 부산일보DB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상하이월드엑스포에 사상 처음으로 북한이 참여한 것이 ‘사건’이었다. 북한은 작은 규모로 ‘조선관’을 지어 그들 나름대로 북한 체제를 홍보했다.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유라시아대륙횡단을 위한 출발지인 부산에서 열리는 2030월드엑스포에 북한이 참여한다면 세계적인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대륙을 향한 철도와 도로를 공유하는 남북 공동 선언이 부산월드엑스포 북한관에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너무 터무니 없는 꿈일까. -끝-
※ 공동 기획 :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