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창궐, 선진국 백신 사재기 탓”…과학자들 비판 나섰다
오미크론의 세계적 확산이 선진국의 ‘백신 사재기’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백신 부족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서 변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CNN은 28일(현지시간) 백신 접종의 불공평성과 어떤 증거도 없이 백신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접종을 거부하는 행동들이 오미크론 같은 새로운 변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을 보도했다. 부유한 많은 국가들이 지난 1년간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사재기해 여러 차례에 걸쳐 백신을 접종할 만큼 충분한 양을 확보했음에도 개발도상국과 백신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일관되게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같은 접근 방식이 ‘자멸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유럽인 70% 1회 이상 접종
저소득국은 7.5% 그쳐 격차 심화
WHO “자멸적이고 비도덕” 비난
외신 “과학계 우려 현실로” 보도
영국 사우스햄튼대 글로벌보건 선임연구원인 마이클 헤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유전자 검사 능력이 더 높은 남아공에서 발견된 것일 뿐 아마 백신 접종률이 낮고 진단 검사가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남부의 다른 나라에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헤드 박사는 “새로운 변종의 출현은 백신 접종이 전 세계적으로는 너무 느려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처럼 아직도 백신 접종률이 낮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대유행의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헤드 박사는 또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과 관련해 “더 부유한 국가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비축하고 있고 COVAX에 또는 국가들에 직접 백신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COVAX는 WHO의 글로벌 백신 공유 프로그램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 연구원인 프랑수아 벤터는 이번 오미크론 확산 사태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며 그간 아프리카에서 백신 부족으로 인한 변이가 등장할 것이란 우려가 과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자들은 누군가를 돕는 문제에선 그동안 깨달은 게 하나도 없는 게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남아프리카 더반의 콰줄루나탈대 전염병 전문가인 리처드 러셀 박사는 새로운 변종 발견 소식에 부유한 국가들이 보이는 반응을 ‘이기주의’로 봤다. 러셀 박사는 “내가 정말 역겹고 괴로웠던 것은 영국과 유럽이 시행하는 유일한 조치이자 강력한 반응이 이동 제한이라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 국가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은 없었고, 우리가 1년 내내 보아왔고 경고해온 백신 불평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다른 과학자들과 공중 보건 전문가들도 이번 오미크론의 확산 원인으로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간의 예방 접종률 격차를 거론하고 있다.
건강 연구 자선단체인 웰컴트러스트 이사인 제레미 파라는 새로운 변종은 왜 세계가 백신과 기타 공중 보건 도구에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해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피력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새로운 변종은 전염병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준다”면서 “불평등은 팬데믹을 연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의 7.5%만이 코로나19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다. 반면 고소득 국가의 경우 63.9%가 적어도 한 번은 주사를 맞았다.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유럽연합과 미국의 경우 약 70%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은 백신 접종을 했다.
오미크론은 지난달 보츠나와에서 처음 발병했고 이달 들어 남아공에서 확산되면서 변이로 확인이 됐다. 오미크론은 변이 확인 후 3일 만에 5개 대륙, 17개 국가에서 감염이 확인되는 등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