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가이드라인 될라’… 통상임금 소송 진행 기업들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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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 노조 통상임금 소송 승소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들이 1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과 소회를 밝히고 있다.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16일 나오면서 조선업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A 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9년간 이어진 소송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 신의칙 적용 판단 기준 제시
유사한 소송 중 현대제철 등 긴장
기업 명확한 경영 악화 근거 필요
조선업 비롯 산업계에 영향 클 듯

이번 판결의 쟁점이 된 신의칙은 애초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았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며 초과근무수당 등 차액을 소급해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각종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측은 노동자의 추가 수당 요구 등에 대해 신의칙을 근거로 맞섰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된 각종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를 놓고 판결이 엇갈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한국지엠(GM)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지난해 8월 9년 만에 나온 기아차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에선 “기업의 수익성 등을 고려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현대중공업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혼란을 거듭하던 ‘신의성실의 원칙’에 대해 세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역시 “(신의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일시적인 경영 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이나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다른 기업들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재 만도, 현대제철, 기업은행 등의 통상임금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2013년 이후 100인 이상 사원을 가진 기업체 가운데 약 200여 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기업체 입장에서는 신의칙을 인정받기 위해 경영 악화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부담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 부산고법의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지만, 현대중공업이 대법 판결에 따라 전체 노동자 3만 8000여 명에게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 치 통상임금 소급분은 최대 6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이 판결은 앞으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노동자들의 연장근로 등을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로 예측하지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많이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라며 “회사는 조속한 시일 내에 미지급 임금 지급 계획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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